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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May 31. 2024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셀린 시아마)

여성의 시선으로 만들어낸 자유를 향한 초상

        여성 화가 마리안느는 고립된 섬의 한 귀족 가문으로부터 초상화 의뢰를 받는다. 요동치는 작은 배 위에서 캔버스를 바다에 빠뜨리는 곡절을 격지만 배 안의 남성들 그 누구도 마리안느를 돕지 않는다. 여성이 갖춰야 하는 의복 하나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억압의 시대에 마리안느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여성이다. 마리안느가 그려야 하는 대상은 귀족의 딸 엘로이즈다. 귀족 가문 딸의 초상화는 거의 정략결혼을 의미한다. 굴레를 버리고 떠난 언니를 대신해 정략결혼의 주인이 된 엘로이즈는 화가 앞에 서는 것을 거부한다. 마리안느는 마주 볼 수 없는 얼굴을 초상화로 완성해야 한다.   

 엘로이즈를 속이고 함께 산책하며 도둑 관찰로 완성된 마리안느의 첫 그림은 주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마리안느의 세심하게 훔쳐보는 시선을 좋아했던 엘로이즈는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마리안느는 예술가의 자존심과 부끄러움으로 초상화의 얼굴을 뭉개버린다. 그림은 오직 밀라노로 돌아가고 싶은 백작 부인의 소망일 뿐이다. 마리안느는 쫓겨날 위기를 맞고, 백작 부인이 출타하는 닷새 동안 엘로이즈는 모델이 되기로 마음을 바꾼다. 마리안느의 그림을 허락한 엘로이즈의 의도는 무엇일까. 가부장의 권력에 동화된 백작 부인이 사라진 집은 하녀 소피를 포함한 세 여성의 해방구가 된다. 

 그녀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소피를 위해 낮에는 약초를 찾고 밤에는 놀이와 토론을 하며 동등한 높이로 시선을 맞춘다. 마리안느는 자신의 낙태의 경험을 소피에게 알려주고 엘로이즈는 그런 그녀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 그런 건 말로 할 수 없다는 마리안느는 잠든 엘로이즈를 바라보며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그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여인은 아무도 파멸시키지 않는 세 마녀가 되어 여성들의 신전으로 향한다. 어두운 숲, 같은 마음으로 모인 여인들은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는 시대가 내린 저주를 노래한다. 엘로이즈는 신비로운 노래 속에서 여성이라는 굴레에 갇힌 아름답고 깊은 절망을 함께하며 모닥불 앞에서 자신의 옷이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마리안느를 응시한다. 마리안느 역시 안타깝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사랑이 시작된다.

 엘로이즈는 혼자서는 알 수 없던 세상을 마리안느와 소피를 통해 경험한다. 엘로이즈의 선동으로 그려진 ‘소피의 낙태’는 야만의 시대에 오롯이 여성만이 짊어진 고통을 증명한다. 초상화의 얼굴은 모델과 화가가 시선을 교류하는 사랑의 실체가 된다. 찰나의 순간에 피어난 자유를 그림 속에 남기고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환영 속에서 뒤돌아보라는 한마디로 이별을 고한다. 그녀의 몸은 밀라노로 향하지만 영혼은 영원히 마리안느와 함께할 것이다. 뜨겁게 사랑하던 이들의 시간은 소피 앞에 등장한 뱃사공과 함께 막을 내린다. 영화는 온전한 여성의 시선으로 그녀들의 해방구를 만들어 낸다.  

 처음 저택에 도착했을 때, 마리안느는 얼굴이 뭉개진 초상화를 발견한다. 서로의 시선이 닿지 못한 그림은 불타오르고 산화된다. 돌아온 세상에서 마리안느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으로는 그림을 발표할 수 없고, 불꽃 위에 서 있던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그림 속에서 깊고 검은 광야를 외로이 걸으며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마리안느는 이 그림이 슬프다. 하지만 어느 날 발견한 아이와 함께 한 엘로이즈의 초상화는 마리안느를 웃게 만든다. 세월이 더 흘러 오페라 극장을 홀로 찾은 엘로이즈를 발견한 마리안느는 비발디의 『여름』 전곡이 연주되는 동안 더 이상 자신과 마주할 수 없는 엘로이즈를 생애 마지막으로 훔쳐보듯 응시한다.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했던 엘로이즈의 긴나긴 울음은 그녀가 그녀답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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