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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May 22. 2024

<메이 디셈버>(2023, 토드 헤인즈)

계란은 한 바구니가 아닌 여러 바구니로.

       13살의 조는 36살인 그레이시를 만나서 관계를 갖고 아이를 가지게 된다. 그레이시는 미성년자 강간죄로 옥중에서 출산을 하고 책임감을 가진 조는 성인이 된 후 그녀와 진짜 부부가 된다. 세월이 흘러 조의 나이가 그때의 그레이시의 나이에 이르고 아이들은 대학 입학을 위해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만족스럽고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을 잊지 않은 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오물을 보내는 등의 테러를 가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어느날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배우 엘리자베스가 취재를 위해 부부를 찾아온다. 이들의 삶에서 잠들어 있던 균열은 낯선 이의 도발에 의해 살얼음 같은 표면을 뚫고 나온다. 영화가 파고드는 부분은 여기까지다. 

 엘리자베스는 그레이시를 연기한다는 이유로 부부 주변 모든 사람을 만난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그레이시의 생활을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때로는 도발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세운 어떤 목표에 닫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의 허울 좋은 연기철학은 알려진 기사들을 바탕으로 어떤 결론을 만든 것 같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조를 유혹하고 잠자리를 같이하지만, 그녀와 달리 조는 이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는 중반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이고 도발적인 엘리자베스와 가족 위에 군림하는 그레이시의 대립에 초점이 맞춰진 듯 보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어른이 된 조의 성장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대학 진학을 앞둔 아들과 지붕 위에서 대마로 보이는 연초를 핀 후나, 엘리자배스와의 원나잇 후에 보이는 조의 행동은 사건 이후 그의 삶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한국 이민자 가정의 아들인 조는 이민 이후 동생을 돌보고 부모를 걱정하는 속 깊은 장남의 역할을 해온다. 그리고 자기 가족에 대한 사려깊은 사고를 그레이시에게도 투영한다. 하지만 그의 책임감은 아이들이 자신의 품을 떠날 시기가 되자 자기 삶에 대한 회의와 의문으로 변한다. 아마도 그레이시가 어린 나이에 전남편을 만나고 결혼 생활을 불행하다고 느낄 때 조를 만났던 감정과도 유사해 보인다. 또한 조가 한국 이민자 가정의 장남이라는 점은 인종차별적인 오리엔탈리즘을 너무 쉽게 도용한 듯하다. 부부를 집요하게 흔들어놓은 엘리자베스로 인해 그레이시에 의해 가스라이팅 당한 것으로 보이는 조의 내면이 드러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캐롤>(2016)에서는 사회적 통념을 넘어 사랑과 삶을 함께 견인하는 연인을, <다크 워터스>(2020)에서는 대기업의 파렴치한 범죄를 자신의 인생을 걸고 끝까지 파헤치는 변호사를 그려냈다. <원더스트럭>(2018)에서는 억압적이거나 무심한 부모로부터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찾아가는 강인한 아이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 무성영화와 현대영화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인물 깊숙이 천착해, 주인공이 겪는 사건을 통해 인생을 바꿔나가는 여정을 그려냈다. 하지만 <파 프롬 헤븐>(2003)과 <세이프>(1995)에서는 편견과 모순에 밀려 사회적 억압을 극복하지 못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조차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물을 세심하고 밀도 있게 그려냈다. <메이 디셈버>는 토드 헤인즈가 보여준 첨예하게 다른 두 유형의 인물 형태를 한 영화 속에 녹여낸 영화다.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바꾼 그레이시와 여기에 맞물려 시소처럼 침몰해 인생이 포획되고 묻혀버린 조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유형이다. 원하는 데로 행동하고 군림하는 그레이시는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조의 불만은 여기저기 손을 뻗쳐나가고 있다. SNS나 엘리자베스와의 관계에서 보아도 조의 성숙한 육체에는 불안과 결핍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레이시가 죗값을 치르고 두 사람이 부부로 맺어졌다고 해서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범죄의 그림자는 사라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스토킹처럼 취재에 열을 올리는 엘리자베스를 통해 영화라는 메체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휘두르는 폭력성을 함께 드러내려 한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일로 아직도 테러를 당하고 있는 이 부부에게 영화가 미칠 파장을 쉽게 간과할 수는 없다.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이 맞물려 이 영화는 토드 헤인즈가 지금까지 보여준 밀도 있고 심도 깊은 인물 표현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소아를 강간한 실제 사건의 도덕성 문제에 대한 성찰도 없으며, 여기에 영화 메체의 기능에 대한 메타적 설명도 부족한, 한 마디로 여러 가지 주제를 변죽만 울리다 끝난 영화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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