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on A Mar 21. 2024

<이니셰린의 밴시>(2022, 마틴 맥도나)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

     마틴 맥도나 감독의 전작 <쓰리 빌보드>에 이런 장면이 있다. 밀드레드는 딸을 죽인 범인을 오래도록 잡지 못한 경찰서장 빌을 향해 수사를 독촉하는 험악한 문구를 마을 초입의 도로 입간판에 내건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경찰서를 찾아와 그를 협박한다. 그러던 어느날 두 사람이 여전히 큰 소리로 언쟁하던 도중 갑자기 빌이 심각하게 피를 토한다. 그는 말기 암 환자였고 밀드레드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었다. 하지만 빌의 상태를 직접 본 그녀는 엠불런스를 부르고 걱정을 한가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후 여전히 험한 말을 늘어놓긴 하지만 빌의 고통과 죽음 앞에 밀드레드의 태도는 달라진다. 

 아무래도 감독은 사람의 선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처럼 <이니셰린의 밴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지독한 말로 파우릭을 밀어내던 콜름은 파우릭이 마을의 경찰에게 부당하게 얻어맞고 쓰러지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를 다독여 마차를 태워준다. 또 당나귀 제니의 죽음을 비웃는 경찰의 면상을 시원하게 후려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다고 해서 파우릭에 대한 콜름의 절교 선언은 변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시간이 필요한 욕망과 무료하지만 다정한 대화를 해야 하는 욕망의 대립은 끝내 자해와 방화로 이어진다. 고립된 섬 밖은 내전 중이고 섬 안 마을에서는 이해 못 할 인간 내면이 충돌하고 있는데 감독은 죽일 듯이 미워도 도움이 필요하면 외면할 수 없는 콜먼의 최소한의 선의를 그들의 투쟁 사이에 간혹 보여주는 것이다.

 평생을 평온하게 살아오던 그들의 삶에 어느날 갑자기 던져진 절교라는 파문은 결국 서로 다른 욕망에 기인한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인간의 욕망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욕망을 실현하는 것은 각각의 개인에게 속한 천부 인권이다. 하지만 지구에는 80억이 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다면 그 욕망은 최소 80억 개는 넘을 것이다. 나의 욕망이 다른 이의 욕망과 부합해 항상 좋은 결말로 향할 수는 없다. 나막신 장사의 호재는 짚신 장사의 악재다. 그러니 다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콜름과 파우릭의 대립은 폭력으로 변해가고 이니셰린의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꽤 강고하고 위협적인 모습을 보인다. 욕망을 향한 그들의 이 모든 거친 행위는 내전에서 비롯된 불안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인간의 내면이 그러한 것일까,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두 사람의 전쟁에서 파우릭의 동생 시오반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으스스하게 재수 없는 소리를 하며 마을을 떠도는 맥코믹 부인을 시오반은 열심히 피해 다닌다. 그러다 걸리면 ‘어쩔 수 없지’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을의 불우한 망나니인 도미닉의 뜬금없는 고백을 그녀는 정중하게 거절한다. 만약 그 끝이 도미닉의 죽음이라도 어쩔 수 없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콜름의 항변도 무료한 다정함이 최고라는 파우릭의 주장도 시오반은 이해한다. 이는 무례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정중하게 거절하는 타인을 대하는 그녀의 선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꿈을 찾아 섬을 떠난다. 그녀의 선택은 두 사람보다는 다소 현명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시오반일 수는 없다. 그러니 작은 마을에서는 직접 자른 손가락을 던지고 큰 도시에서는 폭탄을 던진다. 도망가도 해결되지 않고 평생 모르는 일인 듯 살아도 어디선가는 벌어진다. 결국 욕망으로 뭉친 모든 인간사의 평온을 위해 사람 사이에는 토론과 협의가 필요하고 정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노력을 이어주는 것은 사람을 돕는 최소한의 선의다.

  이니셰린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전쟁은 벌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인류를 위해 밀드레드와 콜름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최소한의 선의도 필요하다. 언뜻 생뚱맞아 보이지만 이는 감독이 보여주려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며 그의 영화 속 작은 인장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라이브 마이 카>(2021, 하마구치 류스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