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을 헤쳐나가는 얼굴
이 영화에는 마스터 샷(완결 장면)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이선의 얼굴에 딱 붙어 따라다니며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선이의 표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화면에 담긴 표정만으로도 그에게 일어나는 여러 상황이 이 친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는 관객들에게 생생히 전달된다. 보통 영화 속 이야기의 대부분은 주변 환경과 사건이 다양한 화면 속에서 삶의 변화를 추동해 나가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어떤 상황에 부닥친 선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또 결론을 내리고 행동하는지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모든 것이 된다.
주인공의 얼굴에 밀착한 이러한 화면은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의 형식적인 완성도를 꽤 높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라는 상황, 자신에게 닥친 여러 가지 사건에서 선이의 생각은 섬세하고 예민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깊은 고민에 의해서라기보다 아이다운 즉각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보라 일행에게 뒤통수를 맞고 사고가 정지된 듯 아무 행동도 못 하다가 전학헤 온 지아를 도우며 작은 선물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개학 후 역시 보라 패거리에게(게다가 지아까지 합세한) 또 낭패를 당하지만(이는 시간이 지난 후 지아도 비슷한 일을 격게 된다.) 결국 그 원망이 좋아하던 지아를 향한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측은함 때문에 자신을 힘들게 한 보라에게 주워 담지 못할 이야기들을 들려준 것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선이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나름의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 그 충격이 더 크다.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배경을 삭제하고 답답하리만치 화면 가득 선이의 얼굴을 채우는 이유는, 아직은 주변을 잘 숙고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본인에게 닥칠 일들을 상상하지 못하는, 아이는 약간 높은 데서 바라보는 어른 같은 넓은 시야를 가지기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른의 시선이 늘 공평하고 넓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늘 공평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지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함을 보여주는 사람이 선이 곁에 있는데 그는 바로 선이의 엄마다. 조금은 궁핍해 보이는 환경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선이에게 엄마는 쉽지 않지만 대체로 밝은 얼굴로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소주를 지나치게 좋아하긴 하지만 할아버지에 대해 조금 깊은 상처를 가진 선이의 아버지도 삶을 열심히 꾸려나가는 좀 무심하지만 나쁘지 않은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련의 일들이 지나가고 할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선이의 얼굴은 카메라가 조금 떨어져서 있다. 선이의 시선이 조금은 더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흡사 드라마 <더 글로리>의 연진의 더 어린 시절처럼 보이는 보라와 몇몇 아이들을 보는 것은 영화 내내 너무도 불편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오래전 과거에도 저런 아이들이 존재했었는지 아니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기억이 무관심의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극단적인 모습이 수많은 세월의 변화라고 함부로 치부할 수도 없다. 남다르게도 선이는 배려가 담긴 행동이 자연스럽고 그러다 보니 약간 굼뜨기도 하고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다. 지아는 전 학교에서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트라우마 가득한 모습을 보여준다. 왠지 두 사람은 자칫하면 <더 글로리>의 동은처럼 되지 않을까 내심 불안하다. 두 아이는 학급 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학급의 담임은 이러한 위험성을 인지하기는커녕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 학습 방식을 계속 고집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결국 선이와 지아의 관계에서 다른 계기를 만들어줄 모멘텀이 되기도 하지만 불합리하고 나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아이들이 위태로운 환경에 놓이는 이유는 어른들의 행동 결과이기도 하다.
나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천성 때문인지 선이는 자신의 문제에는 생각이 많고 행동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스스로 뭉개버리지만, 동생 연이의 문제에 닥쳐서는 놀랍게도 힘으로 제압하는 즉각적인 행동을 보인다. 자신의 문제에는 서툴지만 동생의 문제에는 분노하며 자신도 실행하지 못하는 함무라비 법전 같은 충고를 던지는데, 뜻밖에도 연이에게서 너무나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누나 그렇게 싸우면 언제 놀아?” 분명 나쁜 교육 방식에서도 어떤 기회가 만들어지긴 했다. 하지만 선이가 지아에 대해 용감하게 변화된 행동을 하는 계기는 수업 환경 때문 이라기보다 동생 연이의 나름 철학적인 물음에서 온 결론임을 추측할 수 있다. 선이의 얼굴로 가득 찬 화면이 지아를 포함하고 연이를 포함하며 아버지의 뒷모습을 포함해 간다. 영화는 끄트머리에 서서히 마스터 샷의 형태를 갖추어 가며 멀지만 나란히 선 선이와 지아 두 사람의 풀샷을 보여준다. 이는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선이와 또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는 지아의 성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