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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Oct 16. 2020

<하얀 리본>(2009) - 미하엘 하네케

극대화된 건조함의 힘


 중후하고 고급스러우며 무거운 하지만 그 속에서는 잘 벼린 무서운 칼날이 관객을 향해 서 있는 영화가 바로 이 <하얀 리본>이다.


  영화의 화자는 마을의 순박한 선생님이다. 그는 소박한 부모님 하에 소박한 꿈을 가지고 마을의 남작의 집에서 일하는 순박하고 귀여운 유모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식을 올릴 때 1차 대전이 시작되며 영화는 끝난다. 숨겨진 인간 내면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모든 영화 속 에피소드가 사랑을 시작하고 결실을 맺어가는 화자의 기본 스토리로 인해 감추어져 있는 듯 하다. 화자도 그렇게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이렇게 감추어져 있던 사람들의 감추어진 추악함은 결국 1차 대전 이라는 역사의 참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다. 화자는 사랑에 빠져 미쳐 알지 못했고 아이들은 더더욱 말을 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자행된 폭력과 패악의 잔인한 진실들은 기도와 회개라는 미명하에 아이들이 맨 상징적인 하얀 리본 속으로 묻혀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많은 일들이 극도로 건조하고 최소화된 화면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욱 극명해진다. 표면적인 표현의 방법들을 덜어 냄으로써 인간의 본성 안에 단단히 감추어진 잔혹함은 화면 그 자체에서 감추어 질 수 없는 영화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이 영화가 감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화를 곱씹을수록 그 안에 감추어진 날이 선 한 가지 주제가 뿌리를 감추고 있는 거대한 빙산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든 감정이든 과하게 담아내던 미하엘 하네케가 인간 내면에 깊이 자리한 잔혹함을 극명히 드러내며 영화가 표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소화시킨 이 작품이 그를 정말 거장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라 생각된다. 영화의 내용은 종교라는 이름 하에 그렇게 조용히 진실을 은폐해 가지만 화면의 색을 걷어내고 인물의 대사를 최소화 하며 조명조차 죽여버린 미니멀한 화면 속에서 인간의 시기와 잔인함으로 인해 벌어진 기이한 마을의 일들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눈에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근원적인 패악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이후 사람들은 스스로 자행한 전쟁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과연 이러한 역사적 과오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인간의 역사가 잔혹하게 흘러 왔다면 그것은 일상의 인간사에 존재하는 소소하고 작은 일부터일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것이 이 영화가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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