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웨이(2004) - 알렉산더 페인

by coron A

살아오면서 살아왔던 한 부분을 정리해야 할 시점이 간혹 찾아오곤 한다. 그것은 세월의 탓일 수도 있겠고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그 고달픔을 이겨내기 위한 한 수단으로서 필요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란 이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조금 멀리서 바라보라고 흔히 충고 하는 것처럼 여행은 삶에 있어서 조금 비켜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인생의 길에서 진정한 ‘사이드 웨이’다.


두 주인공 마일즈와 잭은 같은 길을 가는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 여행을 대함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여행 이후의 그들의 삶은 다를 것이기에 각기 다른 꿈을 꾸고 여행 내내 의견이 맞지 않아 투닥투닥 한다. 새로운 삶이 시작될 잭은 그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주체할 수 없어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불같은 연애(?)를 시작한다. 하지만 실패한 결혼에 대한 마음 정리가 끝나지 않은 마일즈는 그저 와인이나 실컷 마시고 골프나 치는 사람을 떠난 휴식만이 여행의 목적이라 생각한다. 거기다 탈고한 소설의 출판여부를 장담할 수 없어 계속 마음 한 구석이 무겁지만, 이마저도 잭에게는 여자를 꼬실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어 버린다.


할 수 없이 끌려다니기만 하는 마일즈가 유일하게 생기가 넘칠 때는 바로 와인을 대할 때다. 이는 뭐든 안되고 뭐든 풀리지 않는 중년의 팍팍한 마일즈에게 와인만이 여전히 그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유일한 취미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와인 농장을 여행하면서 와인을 즐기던 그들은 와인에 남다를 취향을 가진 두 여인 스테파니와 마야를 만나게 된다. 열정적인 스테파니와 온화한 마야, 예전부터 그녀 마야를 알고 있는 마일즈에게 잭은 기분전환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의 즐거운 추억을 위해 데이트 기회를 만든다. 하지만 마일즈는 불장난 같은 잭을 탓하며 자신의 소심함으로 인해 마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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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떨어지는 들판에 앉아 좋은 사람들과 즐기는 와인의 향취는 보고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게다가 좌충우돌하는 잭의 애정행각과 그 뒷수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일즈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영화는 가장 평범한 사람 속의 작은 열정과 그 열정이 자꾸 사라지는 삶의 그늘 속에서도 유머와 농담을 섞어서 측은함에만 빠지지 않게 한다. 마일즈는 아마도 정말 인생의 사이드 웨이를 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에게 빗속을 뚫고 다시 마야를 찾아갈 용기를 준다. 그에게는 와인에 대한 열정이 있듯이 삶에 대한 열정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삶의 길은 와인의 깊은 숙성처럼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깊은 맛을 가진 고급와인이라도 늘 고급 글라스에 고급스런 음식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좌충우돌하고 고달픈 삶에서 즐거운 사람들과 와인을 즐길 수 있다면 그는 지금까지의 삶을 '사이드 웨이'로 다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마야와 함께일지 아니면 혼자일지는 알 수 없지만.


ps- 예전에 쓴 글들을 정리하면서 이 글이 왠지 가장 슬프다. 여행이란 단어가 사라질 것 같은 작금의 시대에 언제쯤 사람들과 모여 저렇게 웃고 떠들며 조우할 수 있을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본인이지만 이러한 현실들은 삶을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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