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 장커의 영화 <세계>를 처음 보았을 때 주인공 자오 타오가 화려한 인도 의상을 입고 반창고를 가진 사람을 찾아다니는 오프닝에 꼼짝없이 압도당해 완전히 얼어버렸던 강렬한 경험이 있다. 여기서도 영화가 시작되면 강을 따라가는 커다란 배 안에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는 시선이 보인다. 아마도 일거리를 구하기 위해 철거작업을 하러 온 철새 같은 노동자들과 그 사이로 주인공을 찾아가는 카메라는 고된 노동에서 부딪힐 힘든 생활 속에서도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그들만의 위안을 보여준다. 아주 작고 소소하지만 담배와 술과 차와 사탕의 잠시 잠깐의 위안은 그들의 얼굴 위에 공존하고 있다. 복닥복닥 앉아있는 그들 사이에서 카메라는 자꾸 발걸음이 걸리지만 웃옷을 벗고 노름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간간히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 그 느낌이 영화의 끝까지 하나의 기둥처럼 자리 잡고 있다. 지아 장커는 오프닝의 이 한 씬으로 전체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 주 듯 길고 애틋한 삶이 존재할 그들의 이야기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16년 전 떠난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산샤로 온 산밍은 담배로 산샤로 오고 산샤에 살고 있던 사람들 속에 들어가고 마음이 통할 어린 친구를 얻고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 술을 내민다. 센홍은 2년간 연락이 없던 남편이 일하는 산샤를 찾아와 남편의 곁에 있는 여자를 느낀다. 그녀는 남편이 남겨 둔 차를 컵에 쏟아붓는다. 늘 손에 달고 다니는 물처럼 그녀는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기보다 계속 무언가를 마시며 속으로 삼켜낸다. 이 영화의 제목은 '스틸라이프'다. 그리고 그 스틸라이프 속에서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것은 ‘스틸라이프’에 속하기 어려울 듯한 아주 작고 여린 것들이다. 한 번씩 안개가 걷히고 드러나는 산샤의 아름다운 풍경은 '스틸'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하지만 이미 그 풍경이 사라져 가고 있는 그 삶 속의 사람들은 '스틸라이프'를 따라 그 속도에 맞추기 위해 철새처럼 떠밀려 다니고 있다.
세계적인 규모를 가졌다는 산샤 댐은 그 주변을 어마어마한 물로 채워버리고 그들의 아름답던 자연을 10위안의 지폐와 그들의 눈을 통한 세월 속에 남겨둔다. 산샤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어느새 그들이 옛적부터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은 눈떠보니 부서지고 폐허가 되고 사라져 간다. 그들에게 아직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고된 노동과 외로움을 달랠 한 개비의 담배와 서로 어려움을 나누고 웃음을 함께한 술 그리고 친구가 마지막을 함께하고 어릴 적 아내에게 준 첫사랑 같은 달콤한 사탕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이 위안을 주고받는 그 순간에도 그들의 곁에 서 있던 건물은 무너지고 옛 탑은 그들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이젠 철거를 하러 온 사람들도 더 나은 돈벌이를 찾아 떠나고 삶의 터전을 내어준 산샤의 토박이들도 떠난다. 살아서도 떠나고 죽어서도 떠나고 또 그들은 어디선가 노동을 하고 정착했다가 또 어디론가 떠나갈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그 속도는 가속이 붙어 따라잡기 숨차고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지 끌려가고 있는지 이미 낙오됐는지 그 달려가는 뒤 꼭지조차도 감지하기 어렵다. 100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보여지던 사람들은 오프닝에서 배 안에 차곡차곡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다. 어줍게 사기당하고 험한 곳에 정착해서 중노동을 하고 그리고 담배를 나눠 피고 술을 함께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그 작은 위안들만이 삶이 허락한 유일한 행복일까? 영화의 끝에 아내를 찾을 돈을 벌기 위해 떠나는 산밍을 따라 목숨을 건 광부 일을 하려 함께 가는 사람들 그러한 모습을 그들 곁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숙연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