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없어진 씨네코아 극장이었던 거 같다. 시사회 전에 주연 배우인 유아인이 혼자 무대에 올랐다. 핑크색 셔츠에 붉은색 계통의 보우타이를 맨 신인 배우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풋풋함에 기분이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이제너레이션>(2004)이란 걸출한 영화를 찍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노동석 감독이 계속 다음 영화를 찍지 못하다가 반갑게도 최근에 나온 <골든 슬럼버>(2017)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것이 정말 아쉽다. 장준환 감독의 <화이>(2012)를 보러 가던 심정으로 <골든 슬럼버>를 보러 갔었는데 노동석 감독이 다음 영화로 가는 길이 또 험난해질 거 같아서 많이 애석하다. <마이제너레이션>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단 두 편에만 나왔던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 김병석이라는 배우가 더 이상 연기를 안 한다고 했다던 감독의 말에 엄청 아쉬워했고 당시 해맑은 웃음을 수줍게 짓던 신인 배우는 이제 한국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대배우가 되었다. 그만큼 나는 늙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언젠가부터 영화 속에서 끓어오르는 청춘을 만난다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었다. 인생에서 그 타는 듯한 열정이 때로는 독이 되어 비수를 들이미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고, 영원히 그 독에 취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한 그들의 애처로운 방황이 안타까워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그들이기에 가능한 그 열정에 질투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은 시간이 있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언제나 얄팍한 자기 방어의 본능이 먼저 앞서 나의 현실이 영화 속 힘든 청춘과 맛 물려 나를 괴롭힐까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래도 아직 철들지 않은 내 호기심이 그들의 청춘을 엿보고 싶게 만든다.
그들, 종대와 기수
이제 학교를 벗어난 종대는 늘 열에 들떠있다. 불행한 엄마를 위해 살고 싶고, 혹시나 자신이 출세할지 몰라서 산다는 엄마보다 엄마 같은 영원한 내 편인 기수 형을 위해 살고 싶다. 하지만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래서 총이 있으면 모든 것이 'ok'일 것이라 믿는다. 녹녹하지 않은 세상을 경험한 어느 날, 일한 만큼 번다는 기수를 믿기에는 세상은 종대가 서있는 곳에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돈과 힘을 쥐고 있는 김 사장이 바로 종대 자신의 꿈이고 힘을 가지는 것이 모든 것을 가지는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느닷없이 종대의 손에 총이 쥐어졌을 때, 김 사장도 그 총으로도 힘을 가진다는 것이 모두 터무니없는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시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 종대를 곁에서 지켜주는 기수는 영화 <마이제너레이션>에서의 병석의 또 다른 모습이다. 카드 빚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의 무게에서 다소 영화적으로 바뀐, 자기 콤플렉스와 지나친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종대를 기수는 끝없이 돕는다. 그리고 그에게는 여전히 대책이 서지 않는 형이 존재하고 그 형은 어린 조카를 떠맡기고 집 나간 형수를 찾으러 다닌다. 고통은 배로 늘었지만 더 성장한 기수는 힘든 생활의 무게를 꿋꿋이 버티며 그들을 돌보기 위해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가 종대에게 준 상처와 그 폐허와 같은 자신의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들은 분명 서울에 살고 있지만 그들이 서 있는 그곳은 여러 면에서 낯설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 공간에서 그들은 꿈을 꾸고 아픔을 나눠가지며 그곳은 그들과 함께 살아있다. 늘 다른 세상을 꿈꾸지만 돌아와 다시 그곳에서 평안을 찾는다. 다쳐서 들락거리는 사랑방 같은 약국과 사기를 당한 종대가 기수를 부둥켜안고 절규하는 철길이 사라진 굴다리, 지하에 있는 기수의 방과 멀리 꿈같이 높은 건물이 보이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 속의 종대네 지붕. 여기서 희망을 본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까? 영화의 후반부는 누아르 장르를 연상시키며 극단으로 치닫는 그들의 고통을 강렬하게 쏟아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절망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섣부른 희망도 끝없는 절망도 아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소년이 되겠습니까?”
영화는 그들에게 묻는다. “훌륭한 소년이 되겠습니까?” 소년이라고, 왜? 이제 스물을 넘어선 종대는 아직 청춘에 서있을지언정 이미 십대는 아니며, 이것은 소년을 뛰어넘으려는 대책 없는 객기가 아닌 성인이 되어가는 초입의 열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그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청년이 되겠습니까?’도 아니고 ‘어른이 되겠습니까?’도 아니다. 앞으로 다시 흘러갈 시간 속에서 종대의 뜨거운 객기가 차분히 가라앉을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그 어느 날부터 기수가 가진 책임감처럼 꿈이 현실을 이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 제너레이션>에서의 병석과 재경은 카메라를 끌 때 함께 있었다. 그리고 기수가 떠난 종대에게는 어린 기수의 조카와 안마시술소에서 함께 도망친 정은이 있다. 기수의 자리가 종대의 자리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던져진 그 질문에 종대는 웃으며 “예”라고 대답한다. 그들의 미래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그 삶 속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마이 제너레이션>이 힘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병석과 재경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되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