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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Nov 24. 2020

<파주>(2009) - 박찬옥

 영화가 할 수 있는 아니 영화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의 방식이 바로 배우의 얼굴을 화면 한 가득 잡아내는 클로즈업이 아닐까? 이 영화는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을 이제까지의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시의 적절하게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지금까지 한국 영화 중에 클로즈업을 이렇게 적절하게 영화의 맥락 속에 잘 녹여낸 영화를 못 본 것 같다. 


 영화의 씬이 넘어갈 때 배우 서우와 이선균의 클로즈업은 영화 자체가 지닌 모호함의 실체가 얼굴 속에 담겨 있는 듯 숨은 그림처럼 화면에 드러난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감추어진 운명적인 사건이 그들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얼굴을 통해서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 속 그들의 얼굴은 혼란스러우며 끝까지 그 혼란함을 유지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이 클로즈업과 함께 영화 전체에 부유하듯 떠다니는 이미지는 바로 물이다. 이 물에 관련된 장면들은 모든 상황을 모호하게 덮어버리거나 상황을 종료하기 위해 휩쓸어버릴 위험스러운 존재들이다. 은모가 다시 돌아오는 안개 낀 파주의 초입과 중식이 사람들과 투쟁할 때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비와 폐허가 되어가는 건물들, 안개가 낀 거리라든가 비가 곧 쏟아질 듯한 날씨, 결국 쏟아지는 소나기와 용역 깡패들이 동원하는 살수차, 그 속에서 은모와 중식의 얼굴은 휩쓸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그들의 비밀을 더욱더 깊은 그들의 내면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이 영화를 영화의 앤딩 크레디트가 오르기 직전의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은모가 미애의 스쿠터 뒤에 앉아서 어디론가 가고 있는 장면. 개발의 자본가인 이경영이 검은 세단 안에서 창을 열며 은모를 향해 한 번 미소 짓고는 사라지는 그 장면. 감독 자신은 은모의 마지막 행동이 그녀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악마성, 배덕이라 말했다. 하지만 악마성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은모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함을 배제할 수 없을 거 같다. 결국 사람의 인생에 있어 악마라는 존재는 아마도 알 수 없는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불안함'이 아닐까? 이러한 불안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람의 얼굴에 사람의 생각 속에서 드러난다. 은모의 근본적인 감정은 불안함이기 때문에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고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한다면 결국 정착할 수밖에 없으므로 선택하지 않음을 선택한다. 은모의 눈에 모호함으로 비치는 중식의 삶. 중식의 삶 자체가 은모에게는 불안하고 모호함이 아닐까? 모든 선택이 그냥 자신이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중식을 비추어 볼 때 은모는 모든 상황에 즉물적인 선택을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모호함이고 그 속에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사회의 문제가 숙제처럼 깔려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어쩔 수 없이 아님 별생각 없이 아님 극도로 싫어하며 바라본다. 그런 그 문제들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인생이 있다. 해답이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아마도 이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면 어디든 있는 사회문제를 가장 근본적인 삶의 물음과 함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란 미명 하에 가장 극명하게 사회적 약자의 아픔이 그리고 가진 자들의 폭력이 드러나는 그 현장에 주인공인 중식이 서 있다. 그런 그의 인생은 사랑 때문에 실수하고 사랑해주지 못한 여인의 동생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는 학생운동의 현장에 시골의 공부방에 개발에 밀려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 속에 그리고 교도소에 있다. 결국 우리에게 늘 맞닿아 있는 그 모든 현실 속에 그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있다. 은모가 그렇게 모든 것을 흩뜨리고 떠나버릴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 또 다른 한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은모는 급박한 상황의 중식을 버려두고 떠나버릴 수 있고 중식은 그 상황에 괴로워하며 자신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 현실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입혀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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