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의 그것과는 다른 디지털의 스산함
브루노 뒤몽의 영화는 정말 힘들다. 웬만한 각오 없이 본다는 것은 글쎄 예전 그의 두 번째 장편, 그에게 지금의 명성을 가져다준 영화 <휴머니티>(1999)를 왜 그랬는지 두 번을 보고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디에서 영화 <아웃사이드 사탄>을 보고 난 다음 생각해 보니 다른 이유는 아니고 뒤몽이 구현해 내는 지독히 스산한 자연과 그 속에 철저히 처절하게 고독한 티끌 같은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완벽히 구현해 낸 듯한 화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거대하면서도 스산한 시골의 풍경들을 찾아냈을까.
뒤몽의 영화에 나오는 주연은 그런 얼굴을 찾아보기도 힘들 그런 이미지를 가진 배우들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남자의 얼굴은 친구의 말을 빌자면 큐비즘의 구현 그 자체란다. 얼굴의 각도를 조금씩 달리 하면 처참히 일그러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는 거기까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크리스천들이 들으면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정말 예수님의 모습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정말 괴로운 영화지만 이것도 나이가 든 탓인지 굉장히 미니멀하고 압도적인 스산한 화면 아래서도 괴롭다는 생각보다는 그 속에 티끌처럼 굴러다니는 인간의 모습에 그저 공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인간인지 사탄인지 모를 남자가 행하는 모든 기적인지 악행인지는 그저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티끌의 움직임처럼 보일 뿐이다.
부르노 뒤몽의 영화를 보고 그저 이런 느낌 정도로 충격이 거의 없다는 것은 왠지 나를 서글퍼지게 한다. 예전에는 이불이 없으면 못 보던 공포영화를 나이가 들면서 밤늦게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된 이후 오는 허무함처럼 저 ‘부르노 뒤몽’이라는 감독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보다도 그저 저질처럼 느껴지는 한 남자의 이상한 인간세상 구현을 그저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세상 다 살아버린 노친네 같다. 그런데 그의 화면 속에 담긴 극에 다다른 유혹같은 스산함을 함 재현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 내용이 점점 더 싫어지는 뒤몽의 영화지만 어이없게도 그래서 더 뒤몽의 영화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덧붙이자면 디지털의 날 것 같은 화면은 그 스산함에 무게를 더한다. 오래 전에 보았던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스토커>(2001)의 날이 선 화면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맑은 날의 화면도 리얼 세상의 우중충함처럼 느껴지는 3D는 결코 영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굳게 믿지만 디지털의 화면은 필름이 보여줄 수 없는 스산함의 극치를 보여 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