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트리스(2011) - 구스 반 산트

by coron A

구스 반 산트는 정말 이야기꾼이다. 자신의 몇 가지 스타일에서 최적 절한 것을 골라내서 그것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 속에서 에너벨이 다윈의 이론을 극찬하는 것은 내 전공이 아닐지라도 절대적으로 공감이 간다. 정말 유전자는 위대하다. 수많은 삶의 세월이 지나가면서 좋은 것만 남겨놓으려고 하니 말이다. 에녹은 그냥 딱 봐도 호퍼인데 정말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만 남아있다. 여리고 상처 받으며 순수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감싸는 청춘의 아름다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아마 예상하건대 구스 반 산트 감독도 헨리 호퍼를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느 날 정말 갑자기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인생의 고통이 에녹에게는 교통사고로 에너벨에게는 암이라는 불치병으로 찾아온다. 그 상처들은 그들의 청춘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잠시 머무르는 질투의 화신들 같다. 죽은 사람에게서 인사를 듣고 죽기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에녹은 에너벨의 마지막 삶에 사고처럼 끼어들어 사랑하고 상처 받고 함께한다. 치유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이 영화에 대해 쓴 씨네 21의 정한석 평론가의 글의 헤드라인이 떠오른다.


'살아있으니 사랑하고 사랑하니 놀자꾸나'


이들에게 닥친 이 상처라는 것들은 결국 정의될 수 없다. 비록 사고는 아니지만 타의에 의해 죽음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히로시도 그의 의지와는 달리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의미를 남 길 수 없었듯이 에녹이 고통과 분노와 연민으로 부모님의 흔적을 무너뜨리려 해도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에녹은 에너벨이 떠난 추도식 날 이미 자신의 분신이 된 에너벨에 대해 추억한다. 그 모든 의미, 사고와 사람, 상처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치유의 모습은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에너벨의 모습 하나하나이다. 그것들은 키스하고 사랑하고 함께했던 그들의 이미지 속에서 피어난다.


살아있다. 사랑한다. 즐겁게 놀자.


아마도 추도식장에서의 에녹의 미소가 더없이 아름다운 것은 명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녀와의 삶의 흔적들인 추억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의 눈부신 사랑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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