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on A Jan 06. 2021

<타인의 삶>(2008)-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비츨러의 삶 그리고 영화적 삶

  감시와 도청을 자행하는 주인공인 비츨러는 어찌 보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인생들을 관객들은 비츨러처럼 공식적으로 훔쳐보는 것이고 비츨러는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을 직업으로 훔쳐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본 그 삶에 동화되어 자신의 남은 인생을 그들의 삶을 구하는데 바친다.


 동독의 비밀경찰인 비츨러가 도청하게 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는 작가와 배우이다. 드라이만은 연금을 당하거나 작품 활동이 금지된 우익 작가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잘 나가는 작가이고 그의 옆에는 배우이자 아내인 아름다운 크리스타가 있다. 그리고 문화의 검열을 담당하는 장관인 헴프는 아름다운 크리스타를 탐한다. 결국 우익작가인 드라이만의 감시 감청은 결코 체제의 유지와 신념을 지키기 위한 위대한 사명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삶을 뒤흔드는 파문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도청을 하던 비츨러는 악의적인 장난으로 크리스타가 헴프 장관에게 유린당하고 돌아오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드라이만이 보게 만든다. 그러나 드라이만은 죄책감으로 침대에 웅크리는 크리스타를 뒤에서 잠자코 안아준다. 아마도 이 사소한 장난이 비츨러가 이러한 비인간적인 감시 속에서 폭력적인 시선을 거두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한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엿본 경험들이 그의 삶을 흔들어 놓는다.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사랑과 삶 속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자신을 벗어난 다른 인생에서의 감동을 본 것이다. 그들이 행하던 감시와 억압은 엘리베에터에서 비츨러가 아이에게 공의 이름을 묻는 것과 같다. 무의미하고 필요 없는 것이란 걸 어느 순간 깨달은 비츨러는 그 의미 없는 도청작업을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위대한 일로 변모시킨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또 지켜야 했기에 모든 것을 잃는다.


 시간이 흘러 독일은 통일이 된다. 통일된 독일에서 비츨러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생긴 이질적인 거대한 서점에서 드라이만이 쓴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라는 소설을 구입한다. 그 책의 첫머리에는 “HEW XX/7에게 바친다.’라고 쓰여있고 비츨러는 그만이 아는 미소를 짓는다. 통일된 동독의 삶이 비루해진 것처럼 그 역시 남은 인생을 비루하게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남은 삶을 바쳐서 지켜낸 그 작품은 어느 한순간에 찾은 삶에 대한 감동이 그에게 남겨준 유일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비츨러의 행위를 영화를 보는 관객에 비유한 이유이다. 그는 훔쳐본 타인의 삶에 감동받고 동화되고 결국 그의 남은 편안한 여생을 바쳐서 그를 구해낸다. 그리고 그것은 영감을 잃어버린 한 작가의 삶의 회복으로 그리고 그의 작품으로 돌아온다. 편한 것, 쉬운 것, 단순한 것, 결국 쾌락만을 즐기며 우리가 영화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결국 영화도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누군가가 인권유린을 자행한 비츨러에게 너무나 쉽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 것을 보았다. 비츨러의 행위가 드라이만을 구한 것으로도 용서받지 못한다면 영화를 보고 반응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인 것일까. 이러한 논리가 억지스럽지만 아무도 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것은 어느 누구보다 위대한 일이라 생각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어 헌터>(1978) - 마이클 치미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