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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Sep 09. 2023

<오펜하이머>(2023, 크리스토퍼 놀란)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

    시끄럽다. 완전한 음악도 아니고 음악에 섞인 효과음이 거의 영화 전반에 걸쳐 귀를 뒤흔든다. <다크나이트>의 강렬한 배경 음악보다, <덩케르크>의 비행기 폭격 소리보다도 더 크고 시끄럽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날뛰는 듯한 어지러운 먼지들과 나중에야 알게 될 하늘을 치솟는 가느다란 구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그리는 오펜하이머의 머릿속조차도 너무나 시끄럽다. 전쟁 전도, 전쟁 중에도 그리고 전쟁 후에도 그 모든 것은 인간이 한 일이기에 시끄럽다. 이 소음은 나중에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에게 인생의 조언을 들을 때까지 이어진다.


 제2차 대전의 발발로 지독한 살상이 벌어지고 홀로코스트가 자행되면서 사람들의 나치를 향한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원자가 쪼개진다는 불행한 시대를 타고난 물리학의 위대한 업적이 밝혀진다. 연합군도 나치도 모두 이 사실이 상상도 못 할 살상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이른바 핵무기가 나치의 손에 쥐어지면 안된다는 절박함으로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여기에 가장 적임자는 누구인가? 오펜하이머는 겉보기에 매우 불안정해 보인다. 그는 공산주의와 같은 새로운 이념에 눈을 뜨고 양자역학의 불모지였던 미국에서 그 저변을 넓히는 일을 해낸다. 그리고 노동 운동에 앞장서고 스페인 내전의 난민을 돕는다. 그는 물리학의 천재이며 서부를 사랑하는 가장 미국적인 사람이었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와 함께 일하며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괄 지휘자였던 그로브스는 그의 불완전한 약점을 알고도 그를 로스앨러모스의 연구소장으로 임명하고 오펜하이머는 모든 천재적인 물리학자들의 리더로서 핵폭탄을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다시 영화의 시끄러운 소리로 돌아와서 이렇게 오펜하이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던 로스앨러모스에서의 일들이 이어질 때도 배경음악이나 효과는 귀가 울리도록 시끄럽다. 고민하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이나 심지어 불륜 상대인 진 태트톡과의 부적절한 관계의 장면에서도 소리는 꽤 크다. 감독이 작정한 듯 계속 쉬지 않고 큰 소리를 낸다. 이렇듯 지나치게 큰 배경음악, 효과음과 함께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가장 큰 축은 오펜하이머가 청문회에 서서 그의 업적을 부정당하며 그의 인생을 관통해 보는 이야기다. 그는 불안정한 학창 시절을 지나고 닐스 보어와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와 조우하며 양자역학에 많은 성과를 이룬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와 버클리와 칼텍을 오가며 양자물리학 교수로 일한다. 그리고 그의 진보적인 성향에 따라 공산주의자와 어울리고 연구원들의 노조를 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스페인 내전을 돕는 등의 활동도 병행한다. 2차 대전이 발발하고 원자도 분리된다는 물리학의 위대한 법칙이 발견 된 후, 그는 천재 물리학자들의 리더로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하지만 이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덮는 외피에 매카시즘의 광풍과 함께 그를 파국의 길로 이끈 보수주의자 스트라우의 공직 임명을 위한 청문회가 교차된다. 스트라우의 청문회 과정은 흑백 화면으로 진행되는데 백 아니면 흑, 모 아니면 도, 애국자 아니면 공산주의자라는 이분법을 화면화 한 듯 보인다. 오펜하이머를 무너뜨리려는 스트라우의 계략의 바탕에는 너무나 어이없는 이유가 숨어있다. 이념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공포를 조장한 그 시대의 어리석음을 감독은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이렇듯 오펜하이머라는 천재 물리학자는 핵폭탄을 만들었고 그의 업적은 영화 초반에 언급되듯 불을 인간에게 선물한 프로메테우스에 비교된다. 그리고 그가 열정적으로 이런 살상 무기를 개발한 이유는 결국 전쟁 때문이었다. 나치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며 인간을 학살의 장으로 내몰았고 이들이 핵무기를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재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적 우위는 히틀러의 자살로 그 힘을 잃게 된다. 전쟁에 참여한 연합군이 죽어 나간다는 이유로 치명적인 살상무기로 적국의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문제인지 그 누구도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오펜하이머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히틀러의 죽음 이후에도 그들은 멈추지 못한다. 영화의 시끄러움에 대해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언급해야겠다. 핵폭탄의 시험 폭발이 성공하고 두 개의 핵폭탄은 과학자의 손을 떠난다. 시험 폭발의 성공, 그리고 그 후의 모든 대화 중에도 주변의 소리들은 끝없이 시끄럽다. 결국 두 개의 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고 ‘오피’를 연호하는 로스앨러모스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인류에게 쥐어준 무기가 사람을 어떻게 살상하고 인류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깨닫는다. 상상과 현실이 뒤엉킨 환영 속에서 그의 연설은 영화 배경의 소음과 교차되며 소리의 크기는 정점을 향한다.   

 이후 그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소 냉전의 암울한 시기는 그의 주장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핵폭탄의 확산을 막으려고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지만, 오히려 공산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고 청문회에 선다. 진 태트톡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고 자신의 평생 반려자이자 동지인 아내가 매도당하고 믿었던 동요 학자마저 배신하며 그는 처참하게 무너진다. 그는 무기에 관한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자신의 업적에 의해 스스로 파면당하게 된다. 그가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 그 귀를 찢는 배경음도 점점 누그러진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다른 학자의 증언에 의해 스트라우는 청문회서 낙마한다. 이 사람은 이전에 오펜하이머로부터 자신의 의견을 폄하 당했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스트라우를 낙마시키는데 앞장선 사람은 한 지방 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다. 결국 사람의 일은 사람의 손을 타고 이어진다. 


 핵무기 개발을 시작한 초기에 오펜하이머는 핵폭발이 일어나면 그 연쇄반응이 영원히 계속되어 지구가 불타버릴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들고 아인슈타인을 찾는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그 계산을 거부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로 맨해튼 프로젝트에 아인슈타인의 이름은 없다. 전쟁이 끝나고 스트라우에 의해 초대됐을 때, 오펜하이머는 또다시 아인슈타인을 만난다. 조용하고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현자는 오펜하이머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면 그 업적에 의해 본인이 매도당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잔인하게 모든 것을 잃고 나면 다시 사람들은 그 업적을 만든 이를 위로하며 어깨를 두드린다. 우습게도 이런 것이 인생이다. 조용하게 들려오는 이들의 대화는 아인슈타인 정도 되니 오펜하이머에게 이런 조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 모든 영광과 치명적인 오명조차도 모두 사람이 떠안아야 한다는 그들의 삶이 던지는 원론적인 교훈이 담겨 있다. 

  로스앨러모스에서의 원자 폭탄을 만드는 과정과 처음이자 마지막 시험 폭파 때, 폭탄이 터지고 우리가 아는 구름이 치솟고 태양의 열 배인 섬광이 번쩍이며 사람들의 얼굴에 성공했다는 웃음이 퍼진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꽝!’하는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려온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이러한 것 같다. 나중에 오는 콜레트럴 데미지를 결코 미리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누구든 이익을 취하고 나면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을 정치와 공론으로 매도한다. 그러다 세월이 더 지나면 옛적에 그 무기를 쥐여준 사람에게 어쨌든 고맙다고 인사치레를 한다. 아인슈타인의 조언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사람이 하는 일이 이러하고 인간은 이렇게 오만하다. 왜 이렇게 <오펜하이머>는 시끄러울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불편하게 바라보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원자폭탄을 먼지로 이미지화 하고 이후 대량 생산된 살상무기를 하늘과 함께 구름으로 꿈같이 이미지화하여 영화 초반에 관객에게 혼란과 호기심을 각인시키지만, 오펜하이머의 전기와 같은 이 전제적인 이야기 속에 배경 효과의 소리를 과하게 넣는 것으로 오펜하이머의 불안과 갈등, 윤리적 논란, 심지어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의미까지 감독은 모두 이루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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