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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Mar 22. 2021

<결혼 이야기>(2019) - 노아 바움백

결국 겪어내야 했던 이야기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어색하게 집으로 함께 돌아온 찰리와 니콜그들이 아직은 부부이기 때문에 니콜은 찰리의 표정만으로도 그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말해봐 내가 뭐가 문제인지를?” “아니야이제 같이 할 일도 없는데.” “얘기해봐.” 찰리는 짐짓 기계적으로 아주 쿨하게 자신이 본 무대에서의 니콜의 단점들을 조목조목 말한다그 말을 받아 들고 찰리의 시야를 벗어났을 때 니콜은 폭발하듯 울음을 터뜨린다얼굴 표정만 봐도 아는데 그 앞에서 슬픔을 힘듬을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관계가 되어가는 것이 결혼이라는 이야기 속에 이혼이란 것인가 보다

 

 영화 초반의 이러한 모습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가 하며 심장을 치고 지나간다결혼이란 것을 종료하기로 마음먹고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의 반대편을 향해서 내가 그동안 이렇게 힘들었노라 그리고 들추고 싶지 않은 치졸한 부분까지 오랫동안 참아온 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저쪽은 분명 나의 반대편이 아니라 나의 편이었는데 말이다그런데 그 싸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왜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도 보이고 왜 저렇게 됐는지도 보인다영화를 보고 있는 제삼자인 관객들에게는 너무나 선명해지기도 한다이는 아마도 관객은 그들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그러나 누구나 그 상황에 떨어진다면 똑같은 아니 거의 비슷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혼 소송을 시작한 찰리의 두 번째 변호사의 조언은 꽤 마음에 와 닿는다준비는 철저히 하되 법정까지는 가지 말자, 법정을 가지 않으려면 저쪽이 원하는 걸 들어주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이의 마음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찰리의 조급함은 이 모든 조언을 무시하고  첫 번째 변호사와 함께 살벌한 법정 싸움을 택한다자신의 터전이 아닌 곳에서 양육에 관한 오직 법적인 선택을 받기 위해 낯선 LA에 집을 구하고 취향에도 맞지 않은 인테리어를 하고 없는 돈을 퍼붓지만 결국 아주 엉뚱한 사고를 치고 주저앉는다정말 재미있는 연출은 찰리가 니콜과의 언쟁 중에 거실 벽에 주먹의 흔적을 남기는데 그것을 덮거나 지울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던 찰리는 결국 꽤 많은 출혈을 내는 생채기가 나고서야 그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니콜과 아들 헨리가 떠난 브루클린비록 찰리의 고향 같은 곳이긴 하지만 잠깐이라도 니콜의 소원대로 니콜의 고향인 LA에서 생활했었더라면 그들의 결말이 이와 달랐을까, 아니면 서로가 1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는데 잠깐이라도 니콜이 새로 시작한 LA에서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녀를 밀어줬었더라면 또 어떠했을까모든 결론이 난 후에도 찰리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이런 사후약방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가 이혼 후 혼자 브루클린 거리에 서있는 모습은 그가 브루클린의 붙박이가 아닌 잠깐 그곳을 벗어나는 것이 그에게 정말로 힘든 일이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뭐 그랬다면 또 다른 문가 생겼을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는 건 이러한 생각 이러한 상황은 꼭 결혼의 이야기 중 이혼에만 존재하는 문제 아니라는 이다

 

 첫 장면에서 그들이 서로에 대해 쓴 칭찬을 미리 읽었더라면 이후 그들에게 벌어진 난타전을 무마할 수 있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그러나 사람이 무언가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은 참 어이없게도 몸과 마음에 여러모로 상처가 나고 고통을 겪어낸 이후이다그러면서도 인생이 더 야속한 건 대부분은 눈 앞에 닥쳐온 현실을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고 결국은 벌어질 일은 벌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일이 벌어진 후에는 변명을 하고 싶지만 되짚어 보면 터닝이 될 뻔한 순간들이 보이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고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렇지만 위로하자면 결혼 생활에서 이혼이라는 종착점 꼭 나쁜 결론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이건 또 다른 한 종류의 기착지다왜 인생이니까인생에서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으니까더 단단해진다던가 더 깊어진다는 같지 않은 개소린 접어두고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덜 무거운 이혼 이야기로 이 영화는 정말 훌륭하고 만족스럽다.


  이혼 후 돌아와 자신을 위로하는 극단원들 앞에서 찰리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정말 빵 터지게 만든다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위대하게 해낸 일은 서로의 약점을 현미경처럼 드러내는데도 그들이 극악스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여성 동지의 차원에서 찰리를 보면 이 답답한 인간아!”라고 몇 번이나 부르게 되지만 종국에는 그래 너도 나름 힘들었겠지.’하고 생각하게 된다솔직히 <프란시스 하>라는 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노아 바움벡 감독을 그리 높이 사진 않았지만 이 영화를 계기로 다시 챙겨서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슬프고 답답하지만 그런 게 인생’ 같은 결혼 이야기의 속내를 정말 잘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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