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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Apr 13. 2021

<스파이의 아내>(2020) - 구로사와 기요시

고전영화처럼.

 드디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도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하기 시작했나 보다. 고전적인 스타일의 스파이 장르를 가지고 와서 그 속에 자신이 가진 일본 사회에 대한 소회와 그동안 영화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들을 소환해 왔다. 일견 로맨틱한 스파이물이지만 그 속에는 기요시 감독이 그동안 해온 공포영화들의 괴괴한 분위기와 정서가 녹아있다. 덧붙여 한 때 맹위를 떨치던 일본 고전영화의 독특한 숏들까지도 멋지게 재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 속에서의 필름으로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 속에서 그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한 그들의 군국주의를 감독만의 관점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의 정신이 녹슬지 않았다는 점이 그저 반갑고 존경스럽다.


 코즈모폴리턴이라 자처하는 무역상 유사쿠와 그의 아내 사토코 그리고 사토코의 소꿉친구인 헌병분대장 야스하루. 이들은 아주 직설적인 시대의 상징이다. 전쟁이라는 특수를 거상으로 누리고 있는 유사쿠와 사코토 부부는 화려하고 유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1940년에 접어들어 태평양 전쟁의 기운이 일본 사회를 잠식해가고 있을 즈음 사코토의 소꿉친구 야스하루가 헌병대 분대장으로 그들 앞에 부임해 온다.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사코토를 아내로 가진 유사쿠를 압박하는 야스하루와 거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유사쿠와 사코토. 하지만 출장으로 간 만주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엄청난 만행을 보고 들은 유사쿠는 그것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스스로 군국주의를 배신하는 스파이가 되고자 한다. 유사쿠와 사코토는 제국의 감시의 시선을 벗어나기 위해, 야스하루는 그들을 감시하게 위해 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장소와 이미지 그리고 아름답고 괴괴한 조명은 분명 이 영화가 기요시의 가치가 담긴 자장 안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유사쿠가 영화를 찍던 회사의 창고와 극장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의 배경은 <큐어>의 그것이 증거를 숨기던 숲 속의 공간은 은폐의 상징이었던 <완벽한 수장룡의 날>의 폐공원을 연상시킨다. 기요시 감독이 지금까지 쌓아온 이미지 속에서 스파이물이라는 장르를 소화해내는 능력은 과연 기요시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영화는 그중에도 <큐어>의 흐름 속에 완벽하게 녹아있다. 그들이 향해가는 방향, 즉 유사쿠가 만주에서 맞닥뜨린 일본의 만행이 그가 촬영한 필름과 함께 유령처럼 아니 주술처럼 사토코를 끌어들이고 그 모든 사건들이 벌어진 후 밀항하는 사코토의 가방 안에 든 필름은 군국주의에 빠져있는 헌병대장 야스하루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정의라는 절대적인 신념이 놓여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목숨과 거래하는 그 신념과 배신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야스하루의 신념은 어떤 면에서는 형체를 알 수 없이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회로>의 그것과도 역시 겹쳐 보인다.


 그렇기에 유사쿠와 사토코의 목표나 실행은 시작부터 매우 허무하다. 패전 후 지금까지의 세월을 겪어와도 군국주의가 바탕이 된 그들의 사고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패전의 폭격 속에서 바닷가를 보며 오열하는 사토코의 모습은 왠지 <회로>의 마지막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료스케처럼 보인다. 분명히 잔혹한 군국주의에 제동을 걸어보려는 1940년대의 이야기이지만 기요시가 지금까지 해온 인간이 사라져 가는 그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안에 이 영화는 놓여있다. 결국 정의로운 세상을 지키겠다는 세계인으로서의 자각도, 사랑과 행복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소망도, 제국의 군국주의를 사수하려는 폭력적인 맹목도 가장 중요한 인간의 가치가 빠져버린 허무와 실패만 남은 결말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확실히 보이는 감독의 신념이라는 것은 결국 세상을 구하는 것의 시작은 영화로부터라는 것이다. 유사쿠와 사코토가 사랑스럽고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것도 영화를 통해서고 사토코가 변모해 가는 것도 영화로부터다. 스파이로 자신을 위치시키고 이 모든 사건의 발단 역시 유사쿠가 만주에서부터 찍어온 영화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나치를 피해 옛 연인을 버리고 망명을 택하는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그 영화 속 사코토는 숨 막히게 아름답다. 아오이 유우는 일본의 옛 필름 속 여배우의 연기를 아름답게 끌고 온다. 나카하라 코우의 <월요일의 유카>나 마스무라 야스조의 <입맞춤> 속의 지금으로 본다면 약간은 과장돼 보이는 주인공들처럼 유사쿠의 영화 속 스파이의 모습과 실제로 스파이로 분해 유사쿠를 돕는 사코토의 연기, 그리고 그 속의 아오이 유우는 디지털 속에서 필름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시네필의 감성을 자극한다. 결국 버리고 버려진 사코토의 미래는 세상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은 구원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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