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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Nov 13. 2021

<모가디슈>(2021) - 류승완

내전 속의 또 다른 내전 

<모가디슈>(2021) - 류승완

<스포주의>


 그들은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꼭 이겨야만 하는 최악의 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함께하기로 의기투합한 남한 측의 한신성 대사와 북한 측의 림용수대사는 각각의 참사관인 강대진과 태준기를 이끌고 남측은 이태리 북측은 이집트 대사관으로 내전 발발로 인해 지옥이 되어버린 모가디슈를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대한민국 대사관의 문을 나선다. 그들이 타고 가던 승용차는 문을 나서자마자 반군들을 만나는 위기에 부딪히지만 어쨌든 무사히 각각이 목표했던 곳에 도착한다. 이태리 대사관에서 한 대사는 대한민국 측 직원들만 구조기에 태우겠다는 이태리 측의 제안을 받는다. 강 참사관은 그 제안을 받자고 하지만 한 대사는 북한 사람들 모두 대한민국에 전향한 사람들이라 속이며 모두가 탈출할 수 있게 다시 도움을 청한다. 한 대사는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약간 빈정대는 강 참사관 앞에서 후회와 결심을 반복하며 애를 태운다. <극비수사>나 <암수 살인>에서 보았던 김윤석의 가장 진솔한 인간적인 표정이 돋보인다. 결국 이태리 대사는 한 대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한 대사는 인원이 많은 북한 측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차도 한 대 더 빌린다. 하지만 돌아온 두 사람이 차에 앉아서 문이 열리는 대사관 내부를 쳐다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 벌어진다. 


 문 안쪽에는 보여야 할 한국 직원들이 아닌 세명의 북한 대사관 직원이 나란히 도열해 있고 그 뒤에 림용수 대사가 위협적으로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순간 앞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전날 북한 대사관 일행들은 중국 대사관마저 습격당해 완전히 갈 곳이 없어지자 결국 한국 대사관 앞까지 오게 되는데 할 수 없이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려던 임대사를 태준기 참사관은 가로막으며 우리 모두 돌아가면 숙청당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림 대사는 여차하면 장악하자고 반대하는 태 참사관을 설득한다. 그리고 이들이 대사관에 들어올 때 이를 지켜보던 한국 직원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배웠던 이야기들을 수군거린다. ‘그들은 다 훈련된 군인들이고 아이들도 군사교육을 받는다더라.’ 인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강대진이 아무리 국정원 요원이라고 해도 쪽수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록 이 대화를 모른다지만 눈앞에 보이는 상황은 충분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고 한대사와 강 참사관의 표정은 급변한다. 하지만 천천히 문이 더 열리고 한 대사의 부인이 서서히 그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집트 대사관에서 소말리아를 탈출할 방법은 찾지는 못했지만 차를 한 대 더 빌렸다고 큰소리를 치는 태 참사관의 모습도 보인다. 


 북한 일행들이 반군들에게 습격을 받고 갈 곳을 잃고 헤매다가 결국 한국대사관 앞까지 도착했을 때, 한국과 북한의 사람들은 드려 보내니 마니 들어가니 마니 서로 티격태격 하지만 반군들의 습격에 의해 결국 세상 가장 반대편에 있는 적국의 대사관 안에서 함께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 대사관을 보호하고 있던 소말리아 경찰들은 사람이 많아졌으니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며 겁박하다 떠나버린다. 대사관 직원이기 이전에 국정원 요원인 강대진은 북한 일행을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북한 직원들의 여권을 이용해 전향서를 위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북한 보위부 요원 출신인 태준기와 살벌한 난투극을 벌인다. 생존을 위한 탈출방법을 의논하고 서로 다른 나라의 대사관을 다녀올 때까지 그들은 내전이 발발한 위기의 상황보다는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불신의 공기에 더 지배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모두 군인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사람들과 한국 측이 내놓은 식사를 선뜻 먹지 못하는 북한 사람들, 하지만 그 불신의 공기를 완전히 걷어내는 씬이 바로 이 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실감 나는 내전의 묘사와 자동차 탈출의 스펙터클은 이 영화의 엄청난 볼거리이며 장점이다. 내전 발발 당시 반군과 정부군의 충돌로 인해 혼란에 빠진 모가디슈의 모습과 한군과 북한의 대사관 사람들이 서로 조우하고 머리를 쥐어짜내 총알 세례가 쏟아지는 전쟁의 한가운데를 함께 개조한 자동차로 뚫고 탈출해서 무사히 이태리 대사관에 이를 때까지의 소말리아 내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탈출과정 속에서 그들은 반군에게도 쫓기고 정부군에게도 총알세례를 받는다. 의지할 수 있는 건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인 그들밖에 없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이제 전쟁 장르까지 섭렵해버린 장르의 장인이 된 거 같다. 이들의 의기투합이 돋보이는 탈출기는 전쟁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장르적 쾌감을 무한이 선사한다. 비록 태준기 참사관이 희생되지만 전쟁의 중심에서 안전한 곳으로 벗어나는 분명 해피앤딩의 결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완벽한 해피앤딩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분단의 이면으로 인해 여느 전쟁영화와는 다른 복잡한 감정을 그려낸다. 그들은 함께 이태리 대사관에 머물며 하루 늦게 도착한 구조기를 타고 모가디슈를 탈출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장면들은 대비에 의한 카타르시스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면 서로 UN에 가입하기 위해 총소리 없는 난투전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남한은 강도짓과 거짓 선동으로 서로 간에 뒤통수를 치고 맞는 상황으로 출혈적인 외교전을 펼친다. 내전이 발발한 당일까지 소말리아 외교부 장관을 앞에 두고 뇌물을 더 먹이니 마니 하는 상황으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대걸이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내전이 발발하고 그들의 목표가 생존으로 바뀌며 태도는 달라진다. 


 그들이 도착한 케냐의 공항 활주로에 남한 측과 북한 측의 요원들이 서로 대치하며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생사고락을 같이해 사지를 넘어왔지만 서로 애틋한 눈빛 조차 주고받을 수 없는 적국이라는 현실에 도달한다. 내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참한지 눈으로 보고 그 한 중간을 뚫고 생환했지만 그들은 또 더 소리 없이 악랄한 전시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까스로 벗어난 그 불신의 공기로 다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분리된 두 무리의 모습 속에 북한 측의 아이들은 생사고락을 같이한 남측의 어른들을 당황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지만 어른들은 황급히 아이들의 눈을 가린다. 처음 그들이 한국 대사관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호돌이로 향해 돌아가던 아이들의 눈길을 가로막던 어른들의 손과 생사를 함께한 동지들을 외면해야 하는 그 눈가림의 손은 다르나 다르지 않다. 그냥 어켜구니 없는 상황일 뿐이다. 전쟁 속 생환의 스펙터클한 활극을 보고 나왔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그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웃으면 손을 맞잡고 회담하는 모습을 나라 무너지 듯 바라보는 무리들은 이 영화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졌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다. 전쟁영화의 외피 속에 우리의 분단의 현실만큼 깊은 페이소스를 끌어낼 수 있는 소재가 더 있을까 싶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이 탈출한 남한의 어른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을 가리는 북한 어른들의 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슬픈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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