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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Jul 26. 2023

<클로즈>(2022) - 루카스 돈트

충분한 사유와 선택의 기회를 잃은 친밀함

   젠더정체성이라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나타나고 정해지는 것이라고 철떡 같이 믿는 사람들이 결국 세상에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발전해 왔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현재 일부 유럽은 성인이 될 때까지 젠더를 선택지로 두고 유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루카스 돈트 감독은 전작 <걸>에서 젠더 트랜스를 원하는 주인공 라라가 성인이 되기 전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하는 과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충격적인 빠른 선택을 실행했던 실화에 기반을 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 영화 <클로즈>와 전작 <걸>의 유사한 점은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사회적 환경이 잘 되어있다고 해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아니 아직 인성이 덜 성숙한 듯한 또래들의 무심한 몇 마디가 정체성을 고민하는 주인공들을 은밀하게 뒤흔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들의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다양성에 대해 성숙한 인식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는 것은 여러모로 배재에 대한 공포에서 쉬이 벗어날 수가 없음을 두 영화는 세심하게 보여준다.

  만약 젠더 선택의 유보의 필요성을 이 아이들의 순수함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에서의 두 소년의 친밀함이 설명할 수 있을까? 레오와 레미는 단짝이라는 말을 넘어 깊은 친밀함을 공유한다. 둘은 흔히 어릴 때 꿈꾸던 상상 속의 놀이를 함께한다. 형제처럼 스킨십이 자유롭고 같이 자기도 하며 함께할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의 깊은 친밀함을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놓아둔다. 레미와 레오의 부모 모두 두 친구의 부모를 함께 자처하는 듯하다. 마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의 부모처럼 꽤 이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다름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부모의 노력이 있어도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닌가 보다. 어른들의 좋은 보듬을 받던 아이들의 순수함은 상급학교를 진학하고 새로운 또래들을 만나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경험하면서 천천히 세상의 차이와 모순에 섞여간다. 앞서 언급했듯 집단 속에서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는 누군가에게 그냥 보이는 대로 내뱉는 무심한 언어와 그렇게 치부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레오와 레미는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쉽게 던져지는 언어들에 레오는 레미보다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이후로부터 늘 함께 놀고먹고 자고 등교하던 일상에서 레오는 조금씩 레미를 배재해 간다. 레미는 친구들의 언어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지만 자신을 일상에서 배재시켜 가는 레오에게 점점 크게 상처받고 결국 둘은 주먹다짐까지 하게 된다. 레오는 레미의 성향과 동떨어진 듯한 남성성이 크게 부각되는 운동들에 열중하며 레미와 의도적으로 멀어져 가다가 결국 사건이 터진다.  

  어린 나이에 빠르게 젠더정체성을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그저 어릴 적부터 마음으로 함께 어울려 온 두 소년이 겪는 이 사건은 성인의 경험이라 해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레오는 어울리지 않는 운동을 하고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며 극한으로 자신을 몰아붙여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이겨내려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른 상처와 고통으로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한다. 레미의 사고 이후에 레오와 그 외 학교의 친구들에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학교의 케어과정이 진행된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많은 부분들이 꽤 이상적이지만 그래도 친밀함을 배반한 레오 자신의 죄책감과 상실의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되지 않는다.


  결국 둘의 깊은 친밀함 거부하게 된 레오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집단의 통념으로부터의 배재에 대한 공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레미의 극단적 선택에 어쩔 줄 몰라하던 레미의 엄마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레오에게 레미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하지만 이별 이후 레오는 친구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한 공포까지 겪게 된다.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레오는 용기를 내서 레미의 엄마에게 자신이 했던 일을 고백했을 때 순간적으로 레미의 엄마는 레오를 차에서 내쳐버린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레오를 버린 숲 속으로 다시 찾으러 갔을 때 레오는 레미의 엄마를 향해 몽둥이를 든다. 이 아이에게 벌어진 모든 상황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던 공포의 극복 과정이었음이 드러나는 슬픈 장면이다. 레미를 잃었지만 엄마는 레오를 보듬어야 한다. 어렵지만 이것이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다. 당연하면서도 가슴 아픈 모습이 펼쳐진다.

  차이를 무시하는 사회의 테두리에서 내쳐지는 공포를 경험하는 것보다 내 옆을 함께하던 사람을 잃는 것이 더 아픈 일임을 레오는 레미를 잃은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어렵게 배운다. 아이는 이렇게 성장해 간다. 순수함이 모두와 섞여가는 사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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