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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Sep 07. 2023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2022) - 박송열

험난한 세상 살아가기.

    마땅한 일자리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정희(원향라)와 영태(박송열) 부부는 경제적인 이유로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영태의 선배가 그들에게 중요한 카메라를 빌려 가고, 마뜩잖지만 영태의 무난한 인간관계를 위해 정희는 마지못해 허락한다. 생활비가 바닥나도 늘 한 화면을 채우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카메라로 밥상에서 다툰 후 웃음도 사라지고 함께 밥을 먹지 못한다.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두 사람은 집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안의 화면에서는 주로 혼자 남는다. 

 이불이 펄럭이는 옥상이나 창밖으로 거리를 내다볼 수 있는 영화의 주 공간은 부부의 집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어떤 일이든 열심히 대화하고 무언가 결정하면 눈짓을 교환하며 격려하듯 서로 웃거나 악수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례를 통해 그들이 하는 선택은 돈보다 마음이 편한 쪽이다. 부부는 이렇게 그들 다움을 지키려 애쓰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바깥세상은 그들을 힘들게 하는 무서운 곳이다. 영태의 선배는 카메라를 떼먹고 친구는 다단계의 함정으로 그를 끌어들인다. 정희는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친구에게 사채를 소개받는다. 사채를 빌리러 가는 정희의 앞에는 높고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그들을 향한 외부인의 친절은 뭔가 의심스럽다.

 장모님의 생신 선물을 준비 못 한 원망을 정희에게 쏟아낸 어느 날, 영태는 불편한 마음으로 대리운전하며 딴 세상에서 온 듯한 부부의 낯선 대화를 듣는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희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울기도 한다. 그들의 유쾌한 의례는 돈을 벌기 위한 두 사람의 엇갈리는 생활로 사라지고 홀로 끼니를 때우며 서로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쌓는다. 결국 사채를 빌렸다는 정희의 힘겨운 고백 후에야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마주한다. 영태는 팔려 간 카메라 값을 강탈하듯 받아내고 그런 불편한 행위를 정화하듯 부부는 오랜만에 그들만의 의례를 치른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카메라값을 제외한 일부를 돌려보내지만, 그들을 비웃듯 선배는 SNS에 새 차를 자랑한다. 분에 차서 집 안을 서성이고 밤새 화를 삭이던 영태는 새벽에 문제의 차 앞에서 갈등하다가 그냥 돌아선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집안에서 펼쳐지는 내밀한 부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 <잠 못 드는 밤>(장건재, 2013)과 닮아있다. 서로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행복하지만 아이 갖기를 두려워하던 <잠 못 드는 밤>의 부부 이야기는 약간의 다툼은 있지만 신혼의 꿈같은 영화다. 하지만 <잠 못 드는 밤>의 조감독이었던 박송열 감독은 흘러온 세월만큼 한발 더 나아가, 아이는 고사하고 당장의 생활조차 막막한 현재를 사는 부부의 분투기를 단출한 구성으로 세심하게 그렸다. 대리운전 후 귀가하는 영태의 뒤로 먼 아파트 단지가 존재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가는 골목의 끝에는 바쁘게 달리는 자동차와 나지막한 건물이 보인다. 어렵게 잡은 단 한 번의 취직 가능성마저 놓친 정희의 독백이나 풀 죽은 영태의 등은 보는 것은 애틋하고 안쓰럽다. 사람다운 마음을 지키겠다는 그들이 무서운 세상의 공격에도 항상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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