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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가 김정두 Jun 04. 2023

지구온난화 그리고 지독한 풀베기

우리 별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구나.

나는 1년 365일 중 300일을 야외에서 일을 한다.

흙을 밟고 꽃을 심고 나무를 만지는 직업을 가진 나는 매년 느낀다.

봄의 전령이라 불리는 '크로커스'가 수북이 쌓인 눈 위로 올라올 때면

벌써 봄이 다가왔구나 싶기도 하다.

출처: 위키백과 '크로커스'


카렐 차페크가 쓴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다.

 갓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사람들은 경험 많은 선배들을 만나는 게 즐겁다. 그들은 주로 부산스럽고 나이가 제법 지긋한 사람들로, 봄마다 '이런 봄은 난생처음'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부류다. 날이 쌀쌀하면 이렇게 추운 봄은 겪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60년쯤 전이었나. 날이 어찌나 포근하던지 글제 성촉절"에 제비꽃이 피었지 뭔가." 기온이 예년보다 높은 편이면 또 이렇게 더운 봄은 난생처음이란다.
 요컨대 경험 많은 정원가들의 증언을 들어보더라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예측 불가능하며 우리가 어찌 손쓸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3월에도 얼마든지 땅이 얼고 눈이 쌓일 수 있다. 신께서 부디 정원가들의 가련한 꽃에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매년하고 있다.

혹한 추위가 지나고 꽃샘추위가 올 때쯤 '개화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남쪽 어디에선 벌써 꽃이 만개했다더라. 남부지방에서 자생하는 수종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더라 등등.

결국 우리나라도 동남아처럼 변하는 게 아닌지..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환경단체에서 발간하는 자료를 읽어보면서 공감을 하기도 한다.


지구온난화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점 중 직접 체감하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풀베기'다. 그게 무슨 소리냐라며 반문하실 수 있겠지만...

진짜 풀이 해를 거듭할수록 억세 진다.

가면 갈수록 칡넝쿨은 두꺼워지고, 소리쟁이나 금계국 그리고 망초도 굵어지면서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오지만)


아래 사진은 오늘 오전에 풀베기 작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그녀들


아무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장비를 가지고 풀을 벤다고 한들 칡넝쿨에 한 번 감기면 답이 없다.

패턴은 아래와 같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예초기 헤드를 들어 얽힌 넝쿨을 반대로 돌려서 풀거나 뜯는다.

한숨을 쉬고 다시 한 발자국 나아간다. -> 다시 칡넝쿨에 엮긴다. -> 무한루프에 빠진다.

베고, 얽히고, 뜯기고

'재작년엔 분명히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는데..'

'작년엔 분명히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되뇌어 본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긴 하구나.



물론 나도 길을 걷다가 금계국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다.

심지어 아침햇살에 비치는 노란색 꽃이 바람을 맞아 고개를 흔들거릴 때

황금빛 물결로 보이며 가슴 한편을 따뜻하게 해 준다.

(아니? "얘가 왜 여기에 심어져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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