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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가 김정두 Jul 18. 2023

가이즈카향나무는 일본 잔재 조경수인가요?

그저 일본산 조경수 상품이에요.

 청와대 조경팀에 근무할 때 가이즈카향나무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이래저래 말이 많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된 시설에 어떻게 '일본산' 가이즈카 향나무를 식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지자체, 문화재, 사적지, 공원, 정원 등에 식재된 '조경수'는 주변 건물과 함께 의미를 부여받고 그 당시 시대 배경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청와대 수목관리를 하던 나는 하계전정을 마친 뒤 향나무 수형을 가꾸기 위한 가지치기를 했다. 청와대 개방 전 제한된 인원으로 영내 관람이 이뤄졌고 관람 마지막 코스인 영빈관 주변엔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가이즈카향나무'가 있었다. 다른 가이즈카향나무와 마찬가지로 이 기념식수도 수형을 가꾸기 위해 전정을 하고 있으면 관람객분들이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툭툭 던지곤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식재한 가이즈카 향나무

"청와대에 가이즈카향나무가 있네"

"이토 히로부미가 들여온 친일잔재라던데"


 관람객분들과 직접 대화를 섞어보진 않았지만 그들이 흘리는 말 한 마디씩 듣다 보면 내용이 그럴싸했다. 궁금증을 못 참고 '가이즈카향나무'에 대해 검색하면 '친일잔재 청산''친일 나무'로 전국 곳곳에서 제거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특히 <대구 달성 사적지의 가이즈카 향나무 두 그루> 기사가 흥미롭다.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가 달성 공원에 가이즈카향나무를 기념식수를 했음을 알리고 있다.

 이토가 좋아하는 가이즈카향나무를 식재한 이후로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나라에 식재되었다고 전해지며 오늘날 친일잔재로 남게 된다. 사실일까?



우리나라 향나무와 가이즈카향나무에 대해

향나무

 향이 나는 나무라서 '향나무'다. 잎이나 줄기에서 내뿜는 향이 아닌 나무를 베었을 때 심재에서 진한 향이 난다. 누구든지 이 향을 맡으면 어디선가 몇 번 맡아본 것만 같은 향이 난다. 장례식장과 사찰에서 많이 쓰이는 그 '향'이다. 하루아침에 향나무를 '향'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터라 향나무는 오래전부터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음을 지레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무로 만든 문화재를 살펴보고 그 수종을 파악할 수 있다면 특정한 수종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불교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는 절이나 사찰을 향계, 극락세계를 향국, 불사에 올리는 돈을 향전, 부처 앞에서 향을 피우고 서약하는 것을 향화정이라 칭했다.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가 태어난 곳도 남인도의 향지국이었다. 향나무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이 나무로 향을 피웠기 때문이다." - 강판권,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글항아리, 2019


 “해인사에 안치된 9세기 비로자나불 목불은 원목의 크기와 지름으로부터 '키운 향나무'를 이용해 만든 유물이다.” - 박상진, <해인사 목도 비로자나불의 재질과 제작연대 분석>, <해인사 비로자나불 학술 강연회 자로집> (2005)


 또한 <조선왕조실록>엔 팔공산 동화사에서 향나무를 키워 보급했다고 한다. 오늘날 자생지인 울릉도에 가면 향나무로 만든 다양한 공예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사찰 주변에선 향나무로 만든 염주를 팔곤 한다.


 다른 목재에 비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잘 썩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우리 역사 속에서 오랜 세월 사용된 목재였음을 알 수 있다.


가이즈카향나무 학술표기

 학명은 속명+종명+명명자를 사용해 표기하며 종소명 아래 분류군은 아종(Subspecies. subsp.), 변종(variety, var) 또는 품종(forma, f, for.)으로 표기된다. 가이즈카 향나무 학명은 Juniperus chinensis L. 'Kaizuka'로 여기서 가이즈카(Kaizuka)는 재배종명을 뜻한다. (학명을 이태릭체로 표기하는 게 맞으나 브런치는 이태릭체가 적용되지 않는다.)


 즉, 품종으로도 취급되지 않은 원예품으로 '가이즈카'는 그저 일본산 조경수 상품일 뿐 본질은 향나무 그 자체이다.


'가이즈카'는 무슨 뜻일까?

 일본 관동( 関 東 ) 지방 요코하마 주변에는 패총(貝 塚, Kaizuka) 유적지가 있다. 가이즈카는 패총(貝 塚, 조개무덤)을 의미한다. 패총은 조개껍질이 퇴적되어 있는 유적지를 뜻하며 조개무덤이라 불린다.


 가이즈카는 불교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인 '카마구라시'에도 있다. 이곳 카마구라 겐초지 사찰에는 향나무(수령 760년 추정) 천연기념물이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향나무를 사용하기 위해 (1) 불교 사찰에서 수목을 키웠을 것으로 보이며 파생 상품으로 가이즈카향나무가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와는 다른 위치인 오사카시 남쪽에는 아예 가이즈카시가 있으며 이 도시를 상징하는 나무는 '가이즈카향나무'이다. 패총 유적지가 있는 (2) 바닷가 인근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 가이즈카향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불꽃모양, 용솟음치는 모양이거나 조개모양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거나 지역명이나 사람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57년 박능관 씨와 박능대 형제가 금잔디 농원을 상호로 일본에서 가이즈카향나무를 수입해 판매했다고 하지만, 광복 이후 전국 각지에서 재배한 조경수 목록을 살펴보면 가이즈카향나무가 포함되어 있다. 


 1976년 가지가 나사처럼 꼬인다 하여 ‘나사백’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으며, 가이즈카향나무 명칭은 1980년 윤국병 선생님의 조경수목학(일조각, 197-198쪽)에 등장한다. 하지만, 가이즈카향나무의 일본명은 ‘가이즈까이부끼’로 1928년 일본 요코하마 종묘상 목록에서 상품으로 첫 등장한다.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의 기념식수 - 가이즈카향나무?

 달성 공원 중심에 있던 가이즈카향나무 두 그루는 일제강점기 직전 1909년 대구를 방문한 순종과 이토가 기념식수로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1909년 1월 7일, 12일 두 차례 방문했으며 1월 12일 혹한의 추위에 기념식수를 한다.


 서울로 돌아간 순종은 공원화 사업 조성에 금일봉 500원을 달성공원기성회에 하사한다. 그런데 1909년 기념식수를 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있지가 않다. - 미와(三輪), [朝鮮大邱一班] (1911)


 당시 공원 경영 및 관리 책임자였던 ‘미와(三輪)’는 [朝鮮大邱一班] 저자로 그는 순종과 이토가 식재한 두 가이즈카향나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레 짐작해 보면 (1) 한반도 1월 12일은 절기상 ‘소한’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시기로 이식이 어려웠을 것 (2) 식재를 했지만 어떠한 이유로 나무가 사라졌을 것 (3) 기록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식목일이 4월 5일이다. 아무리 우스갯소리로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지역일지라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그 시기에 나무를 식재한다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1930년 발간된 ‘大邱物語(대구이야기)’은 순종과 이토의 대구 방문을 상세히 기록하였고 두 사람의 기념식수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하지만, 저자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는 식수한 나무를 찾을 수 없음에 아쉬움을 표한다.

當日達城公園に御成り、陛下親しく記念樹の御手植あり、伊藤公の紀念植樹 があつたが、今(こん)日は其跡(そのあと)を溫(たづ)ぬる由(よし)もない。- 河井朝雄(1930)

“당일 달성공원에 행차하여, 폐하께서 친히 기념수를 심으시고, 이토 공의 기념식수가 있었지만, 오늘날 그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다.” - 河井朝雄(1930)


 순종과 이토는 1909년 기념식수를 하였지만 1930년에는 기념식수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달성공원 가이즈카향나무 노거수 두 그루는 1909년 이토가 가이즈카향나무를 좋아해서 기념식수로 식재된 사실은 없었다. 잘못된 사실로 인해 전국에 식재된 모든 ‘가이즈카향나무’는 ‘친일잔재‘로 남아 베어지거나 다른 장소로 이식되었다.


가이즈카향나무 잎 특징

 향나무는 바늘잎(침엽)비늘잎(인엽)을 갖는데 어린 나뭇가지에는 뾰족한 바늘잎이 자라고 7~8년생 나뭇가지부터 비늘잎이 자란다. 가이즈카향나무는 바늘잎이 거의 없이 비늘잎으로 된 용솟음치는 모양이나 불꽃 모양의 개체를 골라내어 상품으로 삼고 '가이즈카'라는 명칭을 붙여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가이즈카향나무도 근본이 '향나무'인지라 가지치기를 강하게 하면 바늘잎이 생긴다.


강한 가지치기 이후 침엽이 발생한 가이즈카향나무

 결론적으로 이토는 논란이 된 달성 공원 가이즈카향나무 노거수를 기념식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여파는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고 우리 마음속에 아직까지도 부정적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식재된 나무라서 논란이 된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산림녹화를 위해 일제강점기에 식재된 '아까시나무'는 오늘날 꿀 생산에 있어 훌륭한 밀원 수종이 되었고 제주도에 식재된 일본 '삼나무'는 울창한 숲이 되어 환경단체 보호 대상이 되었다.


 우리 땅에 자라는 나무와 풀 그리고 꽃은 각각 이야기가 있다. 외래종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생태에 적응한 식물도 적지 않다. 이들의 생활사는 우리에게 감동과 교훈을 준다. 교훈을 따라 시대배경과 장소가 가진 정체성이 일치하는 나무가 뿌리내려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길 희망한다.



논문 출처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7453296&nodeId=NODE07453296&medaTypeCode=185005&language=ko_KR&hasTopBanner=true


기사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80708022100005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8/0000062668?sid=102

https://news.imaeil.com/page/view/2014010914382660668

https://www.minjok.or.kr/archives/105134

http://www.ebaekj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744

http://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69388


단행본 참고

이유미, <꼭 알아야 할 우리 나무의 모든 것 우리 나무 백가지>. 현암사, 2019

강판권,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글항아리, 2019

김태영, 김진석 <한국의 나무 우리 땅에 사는 나무들의 모든 것>. 돌베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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