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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가 김정두 Sep 25. 2023

임금체불과 노동착취 사이

 잡초가 무성히 자랐다. 정원은 처음 조성한 모습은 온대 간대 없고 바랭이, 매듭풀, 쑥, 띠풀, 자리공 등이 점령했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원상복구를 위한 노력을 하자니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이 지겨워진다.


"잡초만 뽑아주는 기계 없나.."

"어후.. 뒤만 돌면 자라고 있네.."

"그래도 오늘 이모님들 오셔서 도와주신대"

"이모님들 오세요?"


 조경회사 미니버스가 한 대 도착했고 통솔하는 팀장과 여덟 분의 이모님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말이 이모님들이지 대부분 손주가 성인인 할머님들이다. 그래도 같이 몇 번 일해서 그런지 낯익은 얼굴이 보이면 서로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이모님들 어서 오세요. 날이 많이 선선해졌어요."

"잘 지냈어요?"

"저야 뭐 항상 건강하게 지내고 있지요"


 오늘 해야 할 일을 간단하게 설명드리고 풀을 뽑으러 갔다. 햇살을 피하기 위해 챙이 넓은 모자와 목부터 눈 밑까지 덮을 수 있는 손수건과 편하게 앉아서 일할 수 있는 허리띠가 연결된 간이의자 등 만반의 준비를 해서 오셨다. 일이 시작되면 서로 말이 없어진다.


"이모님들 잠시 쉬었다가 하시죠. 제가 물 가져다 드릴게요"


 물 한 박스를 가져와 이모님에게 물 한 병씩 나눠드리면 꼭 간식을 건네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사탕이나 젤리나 엿같은 주전부리다.


"날 더울 때는 당을 먹어줘야 해"

"아.. 네. 감사합니다"


 반복되는 일이 도대체 언제 끝나나 싶을 때 일 마칠 시간이 다가온다.


"슬슬 정리하시고 퇴근하실 준비 하시지요"

"벌써~?"


 일이 마무리되면 이모님들에게 뒤도 돌아보지 말고 퇴근하시라고 말을 건넨다. 마무리는 내가 대충 하면 된다. 어차피 내일 또 해야 할 일이니까. 현장 정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책상 위에는 오늘 일하러 오신 이모님들의 신상정보와 개인계좌가 적혀있었다. 문득 나는 그분들이 일하고 받는 일당이 궁금해졌다.


"팀장님 제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런데요. 이모님들 일당이 어떻게 나가나요?"

"뭘.. 그런 걸? 아마.. 한 분당 12만 원쯤 나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건 왜?"

"아. 별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요"


 일당 12만 원. 내가 알고 있는 이모님들 일당과 달랐다. 그분들은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일해도 12만 원을 받아가지 못한다. 임금체불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그래서 각 근로자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개인계좌로 일당을 송금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착취가 발생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이모님들의 임금은 8만 원이다. 4만 원은 수수료로 회사로 입금한다.


 나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모님들은 그래도 내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감사했다. 감히 내가 건방지게 그 부당함을 세상에 목소리 내는 순간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었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게.. 맞나?"

"자본주의가 이런 건가?"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정의가... 이런 건가?"


 나는 소위 '노가다' 판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일한다. 잊을만하면 지인들로부터 '임금체불'이 발생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레퍼토리는 대동소이하다. 본질은 같다.


"이 멍청아. 그래서 계약서를 써야 하는 거야. 의리가 어디 있냐 의리가"

"저 형님은 내가 믿었던 사람인데.."


혹은


"우리 사장님이 나한테 무료로 기술을 알려준다고 그랬어. 현장 와서 보조하며 일 하래"

"그래서 너는 얼마를 받는다는 거야?"

"어.. 그게.. 한 달에 80만원 받고 일 마칠 때마다 추가로 챙겨주시겠대"

"..."


 스승과 제자 간 이뤄지는 도제식 교육은 노동착취를 통한 임금갈취다. 허울만 좋다. 이들은 절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오직 의리로 정으로 간다. 성경 말씀과는 반대로 시작은 창대하지만 그 끝은 미약하다. 백번 양보해서 사람은 믿을 수 있다. 다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은 믿을 수 없다. 어찌 됐든 간에 임금체불은 사람 영혼을 갉아먹는 좀벌레다.


 모르겠다.

 이모님들이 내는 수수료도.

 지인이 꼭 배워보고 싶다며 찾아간 기술자와 도제식 관계를 맺고 한 달에 80만 원을 받으며 푸념하는 것도.


 모르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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