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28
('22.3.28 쓰다 만 일기를 '25.11.3 기억을 더듬어 마무리한다.)
원래 간암에 비해 순하고 진행이 느렸던 방광암 수술을 위한 입원이었는데 아빠의 마지막 입원이 되었다.
입원 날 밤부터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던 것이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에 희끗희끗한 것이 보였고, 폐에 물이 차서 생긴 수인성 폐렴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는 보호자가 한 명만 상주할 수 있었고, 전화 넘어 엄마에게 아빠가 폐렴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 경과가 좋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환자들과 노인들이 결국엔 폐에 문제가 생겨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염증 수치는 떨어지지 않았고, 간암 진단을 받은 후 연명 치료 거부 신청을 해둔 아빠의 의사에 따라 중환자실에 가지 않고 일반 병동 집중 치료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아빠 입원할 때마다 병동을 걸으며 수십 번을 보고 지나쳤던 집중 치료실. 거기에 있구나 아빠가...
연명 치료 거부 의사 확인 후에도 담당 주치의와 교수는 몇 번 더 엄마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정말 안 할 건지.
엄마는 오빠와 나에게 재차 동의하는지 물어봤고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진즉에 우리 가족은 이 건에 대해 결정을 한 상태였는데도 조금, 아주 조금 흔들리기도 했다.
20년 전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실 때, 아빠는 아주 힘들게 기관 절개를 거부했었다. 이미 할머니는 치매가 심했었고 삶이 질이 떨어져서 숨만 쉬는 건 할머니에게 의미도 없고 고통스럽다는 판단에서였다. 너무나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괴로워했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종종 우리에게 당부를 했었다. 본인에게는 절대 연명 치료를 하지 말라고.
고통을 줄이는 최소한의 조치만 받으면서 아빠는 숨을 쉬고 있었다. 엄마는 혼자 그 옆을 지키며 아빠에게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한평생 살아온 부부의 이야기였겠지... 그리고 아빠의 18번 나훈아의 '사랑' 노래를 수도 없이 불러줬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저녁, 오빠와 나에게도 병원에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마지막으로 아빠와 인사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코로나라 1인씩만 면회가 가능하던 때였는데 의료진의 배려로 우리 네 식구가 마지막으로 함께 머물 수 있었다.
단 몇십 분.
울며, 웃으며, 안아주며, 어루만지며, 쓰다듬으며.
귀에 대고 "사랑해, 고마워, 최고였어, 고생했어, 기억할게, 걱정하지 마, 잘 살게, 또 만나." 끊임없이 말하며.
오빠와 나는 아직 누워서 숨 쉬고 있는 아빠와 눈시울이 빨개진 엄마를 두고 다시 나와 집으로 가야 했다.
병실을 나오는 길, 나의 마지막 인사는 '아빠 우리 갈게~ 잘 자~! 사랑해!!!"였다. 아주 밝은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