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위의 아빠

by 지아현

Der Imobuharaboji, der auf dem Sofa sitzt..."

한국에 이모부할아버지만 4명이던 독일의 사촌조카들은 어떤 이모부할아버지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아빠에게는 이런 형용구를 붙이곤 했다.

번역하자면 "소파에 앉아있는 그 이모부할아버지"이다.

나는 정작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보기에 아빠는 항상 소파에 앉아 있었나보다.

그러고보면 퇴근해서 집에 온 아빠는 거의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시끌벅적하게 노는 우리를 바라보곤 했던 것 같다. TV를 볼 때도, 저녁식사 후 차나 과일을 먹을 때도, 시끌벅적한 이모들이 식탁에서 놀고 있을 때도, 늦은 밤까지 들어오지 않는 나를 기다릴 때도.

지금도 철이 없지만 아빠에게는 거의 영유아 수준의 어린아이처럼 굴던 나는 그 옆에 누워 아빠 무릎을 베거나 두 다리를 올려두거나 했다. 그러면 아빠는 자연스럽게 내 머리와 뺨을 쓰다듬어 주거나 다리와 발을 주물러 주곤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철없다는 표현을 넘어 정신연령이 낮다는니 어떻다느니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어린애처럼 머무르는걸 아빠가 좋아할꺼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완전 틀렸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몸이 아프면서부터 아빠는 창가에 둔 1인 소파에서 발받침대에 발을 올리고는 반은 누워 담요를 덮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복수가 차서 배가 땡땡해지고 발이 부어 걷기마자 힘들어 졌는데, 그 당시 바로 옆 동에 살면서 매일 왔다갔다하던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때면 어김없이 현관까지 나와 배웅해주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발바닥으로 바닥을 쓸다시피 슥슥 소리를 내며 걸어와서는 현관문이 닫힐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바라보던 눈빛. 그 때도 나는 이 장면이 그리워지고 보고싶어질꺼라는 생각에 동영상으로 몇 번 찍어 남겨두기도 했다. 몇 개월동안 우리는 매일 그렇게 헤어졌고, 나는 그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일까, 내일도 이렇게 인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그 짧은 길에 엉엉 울기도 했었다.

작년부터 지아가 종종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양 발 위에 자기 발을 올려놓고 걸어가라는건데 이게 이렇게 힘들고 발이 아픈건줄 몰랐다. 왜냐면 나는 이걸 한참 커서도 아빠한테 해달라고 했었기 때문에 쉬운 걸줄 알았다.

나는 아빠에게 안기고, 매달리고, 올라타는 그런 원숭이 같은 캥거루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이제 갓 돌지난 둘째 아이가 그렇게 사람에게 부비고 안기고 올라타는걸 좋아하는데, 스킨십 좋아하는 남편 닮았나했더니 나도 닮았나보다.

아빠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치고는 마치 강박처럼, 잊혀질 것만 같은 아빠에 대한 기억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쓰던 때가 있었다. 그 메모들 중 몇 개만 옮겨볼까.

출근할 때 거울보면서 동그란 참빗으로 뒷머리를 앞으로 넘겨 빗던 모습

밤늦게 들어올때면 불꺼진 거실에서 티비보며 기다리던 모습

내가 먼저 자고 있는 날이면 꼭 내방에 들어와 자는 나를 쳐다보고 나를 토닥이고 쓰다듬던 아빠

아빠 운전할 때 기어스틱에 내 손을 올려놓고 그 위를 손으로 포개어 감싸잡던 것

다 큰 딸 종아리를 주물러 주던 아빠

재채기 소리가 엄청나게 컸던 아빠

안방에서 자다가 답답하다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자던 아빠

김치찌개, 소주, 복숭아, 곰치, 초계탕, 골뱅이, 이태원, 삼청공원, 북한산, 건영옴니수영장, 아야진 등

잊혀질까봐 무서워 막 써내려 갔었지만 이런건 잊혀지는게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교사들과 갔던 배론성지와 오크밸리에서 아빠와의 기억은 머리속으로 먼저 떠오르기도 전에 감정으로 무섭게 휘몰아쳤으니까. 앞으로도 아빠는 어떠한 장소와 어떠한 상황과 어떠한 시간 속에서 계속 기억이 날 것이고 그 기억들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추억과 함께 어우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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