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던 호칭
얼마 전 우리집에 놀러왔던 커플과의 대화 중 뜨끔했던 적이 있다. 커플 중 여자쪽, 삼남매 중 둘째로 사랑 많은 집안에서 자란게 티나는 아이가 말해준 호칭에 관한 것이었는데, 아빠가 자기를 부를 때 성을 붙이는 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빠가 "고윤정~!" 이라고 부른다면 "내가 왜 고윤정이야! 윤정이지!!!" 한다는 것이다.
첫째가 조금 크면서부터 부쩍 성을 붙여 부르거나 "너", "야" 라고 할 때가 있다. 참 별로라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말아야겠다 하면서도, 화를 참지 못할 때는 입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별 것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의 부모가 나를 저렇게 부른다면 거리감이 생기고 차갑다는 느낌이 들 것이며 "네~" 보다는 "왜!" 라는 반응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아빠는 물론이고 내가 차갑고 날카로운 말투에 진절머리 내는 엄마마저도 호칭은 친절했던 것 같다.
아빠가 나를 부르던 호칭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딸~", "딸아~", "따님~", "우리딸~"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은아~" 하고 이름을 부른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 호칭으로 부를 때면 항상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나를 보며 두 눈과 입이 한껏 커졌던 모습이 생생하다.
아, 가끔은 "딸년" 이라고 해서 내가 정색을 하고 눈을 흘기며 싫어하기도 했다.
아빠는 애정 표현이라고 하며 당황하곤 했지만 "년"이라는 게 어디 여자 아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겠는가.
지금은 알지... 내가 어릴 때 싫어했던 "기지배, 가시나" 라는 말을 내가 지아에게 가끔 하고 있으니...
아빠는 심지어 운전할 때도 점잖았다. 내가 들었던 최고의 욕은 "아잇~!" 정도였으니.
그에 비하면 나는 운전할 때 입에 걸레를 물었지. 애들을 태우면 그래도 조심하지만 아직도 혼자 운전할 때는 꽤나 찰진 욕을 내뱉곤 한다. 나이 들어 욕하는 사람 보면 참 추하고 없어 보이는데 큰일이다. 얼른 고쳐야지....
친절한 말은 호칭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첫마디인 호칭이 다정하고 사랑스러우면 문장 끝까지 그럴 수밖에 없는데, 알면서도 내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그리 따스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빠는 이런 생각을 하고 나를 저리 사랑스럽게 불렀던 것도 아니었을텐데, 그냥 찐 사랑이었다고 본다.
딸을 부르며 활짤 벌리는 아빠의 두 팔과 그 품에 한껏 파고들어 안겼던 나는 이제 나의 품을 크고 따뜻하게 가꾸어 내어줘야 하는 엄마가 되었다.
지금보다 더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를 부르는 호칭부터 예쁘게 해야겠다.
"딸아~"는 안되겠지. 딸이 둘이라... 뭐로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