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키워봐야 진짜 어른이 되고 비로소 부모를 이해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다만 나의 경우,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부모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생각해보는 일들이 많아지긴 한 것 같다.
요즘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면 사회운동가나 문화평론가, 유튜버라도 되어 어디 강의를 다니고 있었을 것 같은 우리 엄마. 시대를 조금 잘 못 만나 결혼을 하고 바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몸에 맞지 않는 전업주부의 삶을 한평생 살아버린 여성이다.
일제에 맞서 저항다운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자신과 시대를 비관한 지식인, 그래서 그 울분을 술로 푸느라 집안을 신경쓰지 않았던 아버지와 한국전쟁 당시 무릎에 생긴 염증 치료를 제 때 하지 못해 결국 한쪽 다리를 잘라내어 장애인이 된 어머니를 두었던 우리 아빠.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 짐작을 해보려 하다가도 나의 상상력으로는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다. 어느 신파극에서나 나올법한 몸이 불편한 홀어머니를 모시는 가난한 집의 장남, 어릴 때부터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며 성실하게 일해 집안을 일으킨 남자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
우리 아빠는 말이 별로 없었다.
중매로 결혼한 엄마와 딱히 대단한 애정과 사랑이 있지도 않았을거고,
어린시절부터 짓눌려왔을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이 둘을 낳고는 더 없이 커졌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말도 없었지만 웃음도 적었다.
그나마 오빠나 나를 보면 (특히 술 드시고 오신 날은 더) 활짝 웃었던 것 같다.
나중에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나서도 아빠의 웃음이라고 해봤자 소리없이 '씨익~' 웃는 정도였지 아빠가 '하하하', '허허허' 와 같이 소리내어 웃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정말정말 웃겨서 찐웃음을 내뱉을때도 눈물을 흘리며 온 얼굴로 낄낄댈지언정 소리는 나지 않았었다.
웃어보지 않아 사진을 찍으면 무표정이 되는 얼굴처럼 소리내어 웃을 일이 없어서였을까?
아빠가 몇년째 투병하면서 마음이 약해졌을 때였는지 막 울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왜 우냐고 했더니 자기의 어린시절이, 자신의 삶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아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것 같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건가요?"
나의 어린시절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이제와 그 때를 떠올려봐도 그랬다. 아, 가끔 엄마가 아빠랑 싸우고는 "넌 아빠랑 살래, 엄마랑 살래?" 하고 물어봤을 때 빼고는. 내 대답은 항상 아빠였지만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답이었기에 울기만 했었지.
아빠는 내 자식들은 절대 나와 같은 삶을 살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오빠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는 커다란 산, 든든한 지붕이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구김없이 밝은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빠와 나는 둘 다 웃음이 많고 웃음 소리도 크다.
우리는 그 웃음을 아빠의 인생 마지막 자락에 가장 많이 보여줬다.
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웃는게 가장 좋다고 해서 많이 웃기려 했고 별 일도 아닌 일에 우린 파티
를 열었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아빠의 미소와 웃음은 가장 나이들었던 그 때 비로소 자연스러워졌던 것 같다.
사랑을 많이 받아 본 사람이 많이 줄 수도 있다고 하는데...
보통의 사람이 그런거라면 아빠는 보통 사람은 아닌가보다.
적이 없었던 아빠, 모두가 좋아했던 아빠, 남편으로서는 별로라던 엄마도 나중에는 열렬히 사랑했던 아빠, 자식에게는 바보같이 다 주었던 아빠.
손주들에게는 어떤 사랑을 주었을지 눈으로 보지 못해 아쉽지만 안봐도 안다.
길에서 지나가는 아이들만 봐도 눈에서 꿀이 뚝뚝, "아유~ 인형같다~" 하던 양반이 어땠을지.
영혼이 지쳐있던 아빠도 나에게 이렇게 넘치는 사랑을 주었는데 그 사랑을 받은 나는 내 아이에게, 남편에게, 가족에게,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지금 분노와 짜증과 냉소로 가득 차있는 나는 도대체 얼마나 모자른 인간인가.
기억도 나지 않을 할아버지를 가끔 보고 싶다고 하는 지아에게 나는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어느 정도나 전달해 주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