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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넌 Feb 14. 2022

사람을 이해하는, '기획자의 독서'


| 기획자와 독서

 이 책을 구매할 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한창 독서에 대한 열정이 가득할 때 잠실 월드타워의 '아크앤북'을 방문했다. 미리 구매할 책 리스트를 적고 방문했는데 아쉽게도 한 권이 매장에 없었다. 서점을 둘러보면서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발견한 책이 ‘기획자의 독서’였다. 하고 싶은 일인 ‘기획'과 푹 빠져 있던 ‘독서'가 제목에 쓰여 있으니 집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좋은 기획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획은 어디에나 있고 방대한 작업이다. 방 인테리어를 하는 것,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것처럼 가벼운 일상 속에서도 기획이 존재한다. CCC의 CEO인 마스다 무네아키가 말한 것처럼 기획은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내포해야 한다. 기획은 ‘이렇게 살아보는 거 어때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소한 것도 기획된다면 삶 속에서 더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획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는 방식을 제안하려면 사람 사는 세상을 공부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말한 것처럼 ‘기획자에게 책은 생존 수영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풀이이자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이다. 기획과 책은 여러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다.



| 기획의 산물, 책


 저자는 기획자가 구조를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중구난방으로 정돈이 안된 기획은 경험하는 이의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 그렇기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기획된 것을 항상 뜯어보고, 비교해보고, 더 나은 것은 없을지 고민해보는 것이 기획일을 하는 사람의 기본 태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책은 작가의 생각을 모아 글로 표현하고 짜임새 있게 정리한 기획의 산물이다. 책을 만들 때 표지, 책 크기, 글자 크기, 목차, 글을 풀어가는 형식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며 이를 구조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니 책을 통해 기획을 배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니다.


 저자는 책 정오표를 통해 기획 일의 딜레마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정오표란 책의 틀린 부분을 알려주는 표를 의미한다. 오타나 바뀐 내용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보통 틀린 부분을감추기 마련이지만 일본의 츠타야 서점엔 정오표 섹션이 따로 있으며 고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틀린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독자에게 알맞은 정보를 주는 것이 더 우위에 있는 것이다.

 기획을 진행하는 도중 ‘엎을까 말까'하는 딜레마의 순간이 있다. 지금 힘겹게 하고 있는 이 일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아지는 일인지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더 빠르고 나을지. 엎고 다시 시작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리셋 증후군을 나도 많이 겪어봤다. 저자는 이러한 딜레마 상황에서 냉정하게 ‘그동안 적극적으로 정오표를 발행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수정하고 바로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과거의 것들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어렵겠지만 더 진정성 있어 보인다. 그리고 수정 과정에서 기획은 더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 세상을 읽는 방법 


‘책을 읽으면 세상이 보인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왜 책을 읽으면 세상이 보일까? 책은 세상과 사람을 관찰하는 도구이다. 궁극의 지식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시각을 돋보기 삼아 세상을 관찰할 수 있다. 관찰하는 습관이 중요한 이유는 이해하는 힘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

 홈퍼니싱 브랜드 이케아는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라이프 앳 홈 리포트'를 매년 발간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케아조차도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더 깊이 관찰하고 더 가까이 다가간다.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읽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이케아는 다수의 내부 구성원이 각자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지만 난 내 두 눈 밖에 없고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을 이케아처럼 가까이서 보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독서는 이런 한계를 가진 개인이 세상을 더 다양한 시각으로 그리고 더 깊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책은 읽는 사람이 맥락에 따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매체이다. 흐름을 '읽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책의 이런 특징에 있다고 저자는 추측했다. 기획에서 맥락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브랜드는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보다 맥락 속에서 풀어낸 제안에 집중한다고 생각한다.

 자산관리 앱인 뱅크 샐러드가 고객에게 무료 유전자 검사를 제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뱅크 샐러드는 고객의 소비패턴을 분석해주고 더 나아가 맞춤 금융상품을 추천해준다. 같은 연장선에서 고객의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해주고 더 나아가 맞춤 건강관리를 제안한다. 데이터는 사람이 활용하지 않으면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접근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그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안하는 뱅크 샐러드는 데이터를 사람들의 삶의 흐름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뱅크 샐러드가 추구하는 데이터의 가치가 고객의 삶에 있다는 것을 무료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처럼 기획이나 브랜딩은 떠올리는 것보단 풀어내는 것에 더 가깝다. 그래서 기획에는 맥락 속에서 연결시키고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맥락 속에서 수영하는 법을 잘 알려주는 것이 독서이다.



| 글을 쓰면 보이는 것들


독서라는 인풋이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아웃풋이 있어야 한다. 뱉을 때 생각은 더 깊어진다. 기획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에게 공개하기 전에 곱씹어서 뱉어봐야 한다. 저자는 머릿속에서만 생각한 것들을 찬찬히 텍스트로 풀어써보는 것, 즉 기획의 텍스트화를 항상 해본다고 한다. 글을 쓰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기획을 글로 스토리화 해보면 흐름이 보이고 그 흐름 속에서 부족한 논리와 설득력을 채우거나 어색한 배치를 찾을 수 있다. 기획은 아까 말했듯이 기본적으로 제안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용자가 흘러가듯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기획자, 마케터에게 자주 글을 써보라고 하는 것도 흐름을 짜는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원형에 가까운 본질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획은 경험을 안내하는 동선을 내포해야 한다. 마치 이케아의 오프라인 매장처럼 말이다. 이케아는 고객에게 어떤 동선으로 매장을 둘러보면 좋을지 자세히 안내한다. 고객들이 만족할만한 경험을 위해 철저하게 쇼룸을 둘러보는 동선을 제한하는 것이다. 강제적인 구조에 누군가는 피로할 수 있겠지만 고객들이 의도한 대로 매장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철저하게 계산했다는 것은 이케아의 진심이 느껴진다. 안내하고자 하는 기획의 목적지를 정하고 그 동선을 고려하면 기획은 본질에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글과 기획은 누군가의 생각을 편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패션 브랜드 빔스의 디렉터 쿠보 히로시는 편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것을 다 모아둔다고 좋은 편집매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역으로 간결하게 덜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엄청난 양의 정보 속에서 허우적대는 지금 같은 시대에는 압축이 필요합니다.’ [출처: 매거진B 츠타야] 큰 편집샵을 처음 가면 안절부절못하고 둘러보다가 그냥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현시대는 과잉 커뮤니케이션 시대이다. 내게 쏟아지는 정보가 상당하며 서로 선택받길 원해 더 자극적으로 어필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색을 담은 큐레이팅샵과 셀렉샵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람들도 이미 과도한 정보량에 지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교하게 세분화하거나 라이프스타일별로 분류하여 고객이 선택하기 편리한 곳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작가만의 고유한 생각이 편집된 책과 글이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편집의 과정을 거친 글과 기획은 누군가의 생각이 집약된 것이기에 반대로 글쓰기와 기획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 앞으로도 계속 읽으려고요


저자인 김도영 기획자의 무기는 ‘책’이다. 책으로부터 배우고 책을 일에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내 무기는 책보다는 글에 가까운 것 같다. 글쓰기는 생각이 더 깊어지는 과정이자 기획을 연습할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방법이다. ‘좋아하는 것을 통해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저자가 말하는 일을 잘하기 위한 노력이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브랜드를 잘 기획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SLOWWOWSLOW’가 그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지만 사람을 이해하고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는 제안(기획)을 하고 싶다.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 읽고 쓰는 사람이 되려 한다.


| 마지막 한마디

책을 통해 배운 점이 많았기에 이번 글은 특히 풀기 어려웠던 것 같네요. 자신이 기획과 책의 교집합에 있다고 생각하면 꼭 한 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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