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싶지 않은 선수, 김찬희

합당한 이별조차도 힘든데, 이유없는 이별같아서

by 라가찌
KIMCHANHEE19.jpg 후반전이면 체력이 고갈할만하다. 김찬희 선수의 근육 경련을 풀어주는 황인범 선수


어디서든 사랑받을 축구선수, 김찬희

포항 스틸러스에서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까지 뛰었던 공격수가 평소 좋아하던 팀(대전시티즌)에 합류한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포항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고도 그라운드에 설 자리가 없었던 그에게는 일상에서도 부드러운 독기가 느껴졌다. 팀 내에서 포워드 역할을 맡던 이동현, 박성호 선수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공격수였는데 보다 탄탄한 체격과 순간 스피드가 빨라 기대가 되었다. 팀에서 결과물을 만들면서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레전드로 남는 방법도 있지만, 화려한 스트라이커가 아니더라도 그라운드에서 악착같은 모습으로 팬들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태도가 느껴지지 않는 선수들이 많아서) 모습으로 감동을 주어 팬들의 사랑을 받을 선수였다. 아무래도 포지션이 공격수다보니, 제2의 김은중 선수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팬들도 여럿 있었다.


그가 FA컵 대회에서 목포시청과 맞붙는 경기를 통해 데뷔 첫 골을 기록한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달렸던 기억이 난다. 광주FC와의 홈경기에서 기록했던 멀티골 두 골은 모든 골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전반에 득점을 올렸던 왼발 슈팅과 후반에 득점을 올렸던 오른발 슈팅이 묘하게 닮았는데, 이 날 많은 팬들이 '김찬희'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대 수비수와의 간격을 두고 바운드된 볼을 강하게 슈팅한 두 번째 득점은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득점을 원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후 충주 원정에서는 미드필더 진영에서 수비수 셋을 재치있게 따돌리고 아드리아노 선수와 이대일 패스로 상대 진영까지 주고 받다가 완벽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팀의 두 번째 득점은 그에게 인생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장원석 선수의 코너킥을 오른발로 가볍게 수비수와 골키퍼를 넘기며 골을 기록했는데, 중계 방송으로 보는 내내 소리 지르며 그의 골에 감탄했다.


tmp.jpg 20190103 대전 대흥동 도시여행자


명확한 이유를 가진 선수와의 이별

국내 프로축구 K리그에서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다. 매년 수 많은 선수들이 팀을 오가며 어떤 선수가 팀에 합류하고, 어떤 선수가 팀에서 이탈하는지 오랜 시간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다. 특정 선수가 어던 계기로 우리 팀에 들어왔는지 궁금한 것은 나뿐일까. 선수들은 수 많은 이유를 통해 팀에 입단하겠지만, 최소한 팀의 연속적인 역사와 정체성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이 팀에 들어왔는지 한 문장이라도 답변을 들어야만 한다. 축구팀을 하나의 작은 회사라고 가정했을 때, 취업난이 어려운 요즘 시대에 "당신은 왜 이 회사에 입사 지원을 했는지, 회사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프로축구팀의 대표이사와 감독직은 사실상 정치의 권력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그렇지 않은 팀도 있지만, 대다수의 시민구단은 지역의 비무장 세력과 정치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환경에서 축구팀을 운영하다보니 기업의 자생력이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무색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다른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비해 경쟁력이 너무나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하더라도 축구팀의 얼굴인 축구선수가 어떤 계기로 이 팀에 합류했는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


선수와의 이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는데, 시즌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일방적 해고 통지를 받으며 악감정을 가지고 떠나는 선수가 대다수인데 이들은 정들었던 팬들과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다른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거나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유럽 팀의 경우에는, 팬들이 선수들의 팀 이동 (이적 또는 회사 이동)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는 눈이 많아서일까, 축구팀을 운영하는 구성원들은 타당한 이유가 없는 선수를 영입할 생각도 하지 않으며 선수를 떠나보낼 때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


축구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예정된 이별은 일상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슬픈 감정을 가지고도 일상에서 힘을 내며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이 아닐까. 종종 선수의 실력이 월등하게 좋아서, 혹은 급격하게 떨어져서 부득이하게 팀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는 나이가 들어 물리적인 몸 상태를 스스로 판단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직업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는 없을까. 축구 행정을 하는 분들께 간절히 부탁드린다. 사소한 이별조차도 슬픈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꼭 만들어주기 바란다.


스크린샷 2019-01-03 15.05.04.png 20181231 대전 대흥동 도시여행자


유니폼에 새긴 이름과 등번호

축구선수는 그라운드에서 화려할 지 몰라도, 훈련으로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일상 패턴을 지닌 직업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삶의 동기부여가 되고 싶은 팬의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맛있는 것을 사먹는 대신, 또 다른 사고 싶은 곳을 접어두고 유니폼을 구매한다. 조금 더 비싼 비용을 지급하고 그들의 이름과 등번호를 새기는 이유. 부상없이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기를 바라는 팬들의 마음이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되기를 바라.




축구여행자, 김준태

좋아하는 축구팀을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축구여행을 하고 있어요. 축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축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어요. 축구장에 온 사람들의 표정이 더 궁금한 이유이죠.

텅 빈 축구장 관중석에 덩그러니 앉는 것을 좋아해요. 인기척없는 좌석과 그라운드에서 과거의 사람들을 상상해요. 어느 축구팀이든 화려한 시절을 가지고 있을테죠. 축구장에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만끽하고, 그 감정들이 도시의 일상으로 번지기를 바라요. 축구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텍스트를 기록해 독립출판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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