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르다 서점일기 #8 공간을 이해하는 태도
1. 오랜만에 하루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일상의 대부분을 서점에서 보낼 때가 많은데요. 해야 할 일이 많아서인지 온갖 생각에 가지를 치며 멈추지 않는 생각을 붙들고 있을 때가 많아요. 글을 쓰는 와중에도 들려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의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에 잠시 멈추었다가, 카페 옆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 호흡을 멈추고 있어요. 그래도 오늘은 하루를 정리할 수 있어 고맙네요. 매일같이 이런 정적인 순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앗, 때마침 카페에 노랫소리가 멈추었어요. 데미안 라이스의 중저음 목소리가 공간 구석구석 퍼지는 이곳은 진한 위스키를 머금은 순간처럼 감각을 일깨우네요.
2. 매주 화요일은 정기 휴무일. 서점 문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오늘도 어김없이 서점 문을 살- 짝 열고 누군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발표 자료를 만드느라 작업할 공간이 필요했고, 다른 곳은 고민하지 않은 채 서점으로 향했죠. 한눈에 봐도 먼 길을 따라 여행 온 여행자들과 축제에 대한 이야기, 여행에 대한 이야기,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잠깐의 순간에도 서로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정도의 대화를 나누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공간과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 때문이었을까요. 이곳을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졌어요.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한 번의 만남으로도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 닫혀 있는 문을 마주하고 돌아가는 이들 중에도 밤을 지새울 만큼 대화를 나눌 분들이 있겠죠. 그래서인지 가급적 서점 문을 닫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와 만나는 순간이 즐겁거든요.
3. 생각해보면 요즘 눈앞에 있는 공공기관에 대한 한탄을 많이 해요. 그들은 정해진 원칙에 따라 일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회는 정해진 룰에 따라 살 수 없는 구조를 안고 있잖아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변화를 주어야 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마음이 아닌 거죠. 행정가의 업무 처리 능력은 믿지만, 함께 주변을 둘러보며 어떻게 변화를 줄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어요. 지난해 가을, 순천에서 열린 '국가균형발전박람회'에서 작은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청중의 질문 중에서 "이 나라에는 정체 모를 조직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국정원이고, 또 하나는 대전광역시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말 그대로 웃픈 질문이었어요. 어떤 대상에 일반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경험으로 비추어 기대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에요. 이 동네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내 삶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어 단순한 일이 아니란 말이죠.
4. 어제 그리고 어제의 어제. 온라인 서점으로 도서를 구매할 목적인지 공간에서 책 표지를 마구 찍어대는 분들을 여럿 봤어요. 이곳에 놓인 책이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도 있지만, 공간에 자리 잡은 이유는 따로 있거든요. 어떤 책이 좋은지 고르는 일, 무거운 책 박스를 들고 이층에 올라와 가지런히 매대에 책을 놓는 일. 제가 마땅히 좋아하는 일이고, 해야 할 일인데 당신의 찰칵찰칵이 제 마음을 흩트리고 있어요. 특정 책을 좋아해서, 작가를 좋아해서 찍는 사진이라면 반가운 일이지요. 그렇다면 미리 사진을 찍겠다고 일러주세요. 온라인을 통해 구매할 마음으로 책을 찍어가는 분들이 많으니,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왜 수박 밭에 가서 신발 끈을 묶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서점에서는 책 사진을 직접적으로 찍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찍게 된다면, 어떤 이유에서 책을 촬영하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좋아하는 책을 찍는다면, 언제든 환영이니까요. 당신도 제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군요.
5. '소셜 디자인'에 대한 강연을 다녀왔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해왔던 세월에 대한 마음으로 저를 초대하셨겠죠. 사회 변화에 관심이 있는 열두 명의 대학생 앞에서 몇 가지의 소셜 여행 프로젝트와 마을 축제, 기획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어요. 두 시간 남짓 너무 많은 양의 이야기를 쏟아낸 것은 아닌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나와요. 괜히 목소리가 커지고, 하나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핏대를 세운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경험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평소에 나이가 들어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는데, 특정 대상 앞에서는 격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늙고 싶지 않은데, 몸과 마음에 나이가 들고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눈 감는 어른이 될까 봐 두려워요. 함께 고민하고 변화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늘은 제 이야기를 들려드렸으니, 다음에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6. 2020년, 벌써 이십일이나 지났네요. 저는 올해 두 권의 책을 읽었어요. 서점에서 일하지만, 한 권의 책을 정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 같아요. 게다가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저에게는 더더욱. 읽고 싶은 책은 만리장성처럼 쌓여 있는데, 정작 한 권의 책을 다 읽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슬픈 현실.
ㅡ 오늘의 텍스트
"나쁜 사람일수록 더욱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었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는 노동이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되지만,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고 정의롭지 않은 일을 고발하기 위해 많은 걸 잃으면서까지 투쟁하는 한 명의 정의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선한 영향력까지 무시하기엔 세상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와 나누고 뒷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경찰관속으로』 원도, 이후진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