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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가찌 Feb 14. 2020

서점원, 교토에 다다르다

다다르다 서점일기 #11 교토 서점 여행 (1) 


@Seikō-sya Books   誠光社 , 일본 교토시


1. 지난 나흘간 교토에 서점 여행을 다녀왔다. 이전 여행에서 방문했던 <케이분샤 이치조지점 恵文社 一乗寺店>가 기억에 남아 교토의 다른 서점을 더 둘러보고 싶었다. 서점 방문과 함께 지난해를 되돌아보는 것과 이번 해를 계획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정리되지 않은 채 돌아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향이자, 그가 종종 조깅을 즐겼다던 가모 강 근처를 거닐며 하루키의 일상을 상상하고, 강 건너 오래된 거리와 집이 주는 정적인 시공간을 즐겼다. 이들의 골목 주변을 배회하는 다국적 여행자들이 교토의 일상을 함께 채우고 있었다.  


2.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오사카를 들르지 않고, 오롯이 교토에 다녀온 여행은 오랜만이다. JOH & Company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B KYOTO> 편을 보며 서점과 함께 둘러볼 교토의 공간을 살폈고, 구글 지도를 통해 현지인에게 사랑받는 공간을 검색했다. 여행 정보는 여전히 현지인에게 묻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며, 구글 리뷰에서 여행자보다는 현지인의 댓글에 주목하며 몇 개의 공간을 저장했다. 꼬박 나흘 일정의 교토 여행이지만, 하루는 온종일 축구장에 다녀왔고 오고 가는 하루를 제외하면 이틀 정도의 시간뿐이다. 여행이 계속될수록 공항과 도시 간의 간격은 왜 이렇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3.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가와라마치부터 니넨자카까지 느긋하게 걸었다. 강 줄기에 비치는 햇빛이 걸음을 멈추었다가 문구점에 들러 귀여운 엽서 한 조각을 사들고는 언제 누구에게 편지를 쓸까, 즐거운 상상을 했다. 함께 여행하는 이가 언제 여행을 했는지 가물가물할 때쯤, 편지를 쓰면 좋겠다 싶어 두 조각을 집어 들고는 싱글싱글 웃음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한국에서는 <응 커피>로 알려진 <% Arabica>에서 컵에 묻은 진한 에스프레소의 테를 바라보고는 대체 어떤 원두를 어떻게 추출하면 이런 진한 띠를 만들어 내는지 궁금해졌다.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과 정갈한 공간 브랜딩, 공간에서 여행자들이 만들어 내는 적당한 소음이 이 곳의 커피를 더 맛있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꽤 바빠 보이는데도 직원은 친절한 태도를 유지했고, 한참을 머무르는 동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4. 엉뚱하게도 이번 여행에서의 큰 고민은 가방을 사느냐, 마느냐였다. 다시 생각해도 비싼 가방이지만, 왠지 나를 위해 만든 것처럼 익숙한 가방이어서 꼭 가져와야만 할 것 같았다. (프라이탁은 스위스에서 만든 가방 및 소품 브랜드로 유럽의 큼지막한 트럭의 천을 일일이 재활용 세척해 가방으로 만드는 브랜드) 최근 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비싼 값을 주더라도 업사이클로 탄생한 가방을 오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더해져 이 가방을 꼭 사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면 지금 형편과 맞지 않는 구매였지만, 오래 쓰겠다는 마음으로 구매하려 했는데 매장 와이파이 멍청이가 작동을 하지 않아 결국 구매할 수 없었다. 운명이 아니었던 걸까. 누군가 공항까지의 조바심 나는 일정을 앞두고도 살까 말까 고민하는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호호. 


5. 일본어를 제대로 할 줄 몰라 읽지 못하는 책으로 가득한 서점이지만, 나름 같은 일을 해내고 있는 이들의 의젓한 모습을 만나기 위해 작은 서점을 찾는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책을 팔고 있는지, 지역 주민들은 얼마나 빈번하게 공간을 찾는지. 일본의 작은 서점의 사정은 넉넉한지. 궁금한 것이 참 많아 공간에 오래 머물며 서점을 관찰했다.  


6. <츠타야 Tsutaya>가 새로운 서점을 제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쉽게 따라갈 수 없는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서점 진열 방식을 탈피해 독자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큐레이션을 제안하고, 큐레이터와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다이칸야마 점에서는 여행과 관련된 키워드로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사실 부동산 개발업에 더 가까운 서점이라서 가능한 모델이라 생각한다. 결코 한국의 작은 독립 서점이 따라갈 수 없는 모델이 아닐까. 


7. 한 서점에 들러 한 권의 책은 구매하고 나올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금전적 여유와 공간적 여유가 동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서른다섯에 깨달았다.) 


@Hohohoza   ホホホ座 浄土寺店 , 일본 교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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