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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가찌 Apr 09. 2020

서점원의 일과가 궁금하다면

다다르다 서점일기 #23 서점원의 하루 종일 

@서점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ㅡ 09:20 

화요일은 정기 휴무일이라 미루었던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해결하느라 분주하다. 어제는 자장구를 타고 대전천과 갑천을 따라 달렸다. 전날 무리를 했는지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이 야물다. 출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샌드위치와 바나나를 사서 서점에 다다른다. 화분에 물 주고, 간단한 청소. 최근에 소방수 아저씨처럼 들고 다니며 물을 주는 대형 분무기를 샀는데, 다들 방역하는 줄 착각한다. 


ㅡ 10:30 

국세청에 서류 제출 건을 해결하고, 다음 프로젝트의 타임 라인 수정. 4월과 5월에 꼭 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는데 점점 밀리고 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밀린다. (역시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는 건가) 이후에는 이메일 체크. 스티비 플랫폼을 통한 정기구독 메일이 늘었다. 스타트업 위클리와 오렌지레터, 하이픈은 꼬박 챙겨본다. 


ㅡ 11:00 

프릳츠에서 온 '서울시네마' 원두가 도착했다. 원두 20g, 추출 30초, 40g의 에스프레소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샌드위치를 꺼낸다. 이름과는 다르게 '아이돌 샌드위치 (GS25)'의 달짝지근한 딸기잼에 빠져 하루에 한 개씩 먹을 때도 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무언가 먹을 때는 유튜브가 최고다. 마케팅, 브랜딩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볼만한 'MOTV' 채널을 틀고는 4월 스케쥴러에 이것저것 끄적인다. 


ㅡ 11:50 

길 건너편 대흥동 성당의 예비 종소리로 시작해 약 1분간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서점 다다르다의 오픈 시간과 같아 시간 맞추어 서점 문을 활짝 열며 손님을 맞이해야만 할 것 같다. 고요한 공간에 들어오는 봄바람이 평화로운 오후를 안내하고, 스피커에는 시규어로스와 cigarettes after sex의 노래가 뒤섞여 나온다. 이제 뭉뭉이처럼 손님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간판이 없어서 가까이에 일하는 분들도 여전히 이 곳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려야겠다. 


ㅡ 13:30 

어제 하루 쉬었더니 택배 아홉 박스가 문 앞에 쌓여있다. 2층으로 부지런히 옮기고는 커피 한 모금. 첫 손님 등장.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동네서점 에디션』 을 구매하고는 필름 카메라로 공간을 찰- 칵 찰 - 칵 찍는 모습이 왠지 이 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내심 사진 결과물에도 기대가 된다. 


ㅡ 14:30 

출판사와 유통사에 책 주문을 하고 도착한 책을 뜯어 서가에 진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 한 권이 들어올 때마다 서가와 매대의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다들 느끼지 못하겠지만, 책의 위치를 바꾸는 역할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책을 살- 짝 꺼내놓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ㅡ 16:00 

여행자들을 위해 동네 소개를 하고는 책 박스를 마저 정리했다. 그리고 큐레이션 도서 발송 건을 해결해야 한다. 좋아하는 단어와 작가, 최근의 감정을 듣고 세 권의 책을 골라주는 일. 이번에는 배송이라서 신중히 책을 골랐다. 책을 받아 들고는 실망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왜 골랐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작게 손 편지도 적었다. 오늘은 다섯 분께 책을 보낸다. 


ㅡ 17:40 

택배 박스 포장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이 훼손되지 않는 것도 중요한데, 지구를 위해 최소한의 포장 방법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최근에  '지아미'라는 친환경 포장재를 구매해서 보내는 중인데 얼마나 효과가 있으려나. 서점에서 일할 때면 전화를 받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니지만, 음료를 만들거나 책을 결제해야 하는 순간에는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 도서관의 인터뷰 요청 응답과 전공 도서 문의 전화 세 통의 민원 해결. (대부분의 독립서점에서는 전공 서적을 팔지 않을 거예요.) 


ㅡ 19:00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다다른 책' 포스팅을 하고는 집에 갈 준비. 화분에 물 주고 커피 머신을 마감하고 청소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비우는 일. 최근 드라마에 나오는 서점은 어떤 모습이려나. 책을 단순히 사고파는 공간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손님들과의 관계 형성은 쉽지 않다. 독서 모임과 북토크가 중단된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다. (아, 마지막 손님은 매번 예약 구매로 책을 기다리는 분이 다녀가셨다. 서점은 결국 작가와 독자로 살아가는 공간임을 확인했다) 이제 퇴근해도 되려나. 


ㅡ 20:00 

정시 퇴근. 

"화려했던 불빛들, 사람들 목소리로 떠나간 거리에 남아서 홀로 걷다가,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는 떠나온 곳으로" <Let me Home> 버닝햅번 중에서 - 


@서점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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