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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가찌 Jul 12. 2020

From Chernobyl to Daejeon

다다르다 서점일기 #37 배달 음식을 줄여볼게요 

@서점 다다르다 , 대전 은행동 


"나는 케이티와 함께 옥상에 올라 앞으로 만 년간 이어질 침묵을 생각했다." (p.198) 

『체르노빌 01:23:40』앤드류 레더바로우, 안혜림 역, 브레인스토어 


1986년 4월 26일 오전, 체르노빌 일대는 수천 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의 사람들도 떠났지만, 남은 사람들과 태어날 사람들도 이미 아픔을 겪고 살아야 하는 끔찍한 사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 가까이에 있는 일본 후쿠시마에서도 원전 사고가 일어났지만, 안전에 대한 무감각은 금세 일상을 채워버린다. 최근 대전에서는 원자력 연구소에서 방사능 폐기물을 무단 폐기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관의 유감 표명으로 재발 방지에 대한 가벼운 약속을 받아낸 상황이다. 원전 사고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약 35년 전과 9년 전의 사고의 후폭풍이 이렇게 끔찍한데도 원자력 발전소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고가 일어나야만 시민의 의식이 바뀌는 걸까. HBO 드라마 <체르노빌> 역시 체르노빌 재앙의 진실을 영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기후 위기’라는 말을 줄곧 쓰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일상이다. 최근 대전 자양동에 <자양분>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플라스틱 프리를 선언하고, 텀블러와 머그컵에만 음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 사회의 문제를 청년 주체가 앞장서 해결 과정과 결과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도시여행자 역시 2011년 대흥동에 여행자 카페를 오픈하면서 테이크 아웃 서비스를 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텀블러와 머그컵을 들고 오는 분들께만 음료를 내어 드리고 1,500원을 할인해드렸는데 생각처럼 좋은 피드백을 듣지 못했다. 공간 서비스를 누리는 범위 안에서 환경적 대안을 찾아야 했는데, 텀블러와 머그컵 혹은 NOT FOR SERVICE를 강요했다는 느낌도 든다. 가치 중심적으로 기획하면서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환경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비생산’을 제외하고는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구를 위한 일인데,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서점 다다르다에서도 PLA (Poly Lactic Acid) 바이오 수지로 만든 컵과 뚜껑, 빨대를 사용 중이다. 플라스틱 빨대에 비해 5배나 비싸지만, 음료를 내어주고받는 관계에서 환경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는 접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생분해되는 소재를 쓴다 하더라도 결국 일회용을 쓰는 패턴. 많은 날에는 하루에 100개의 플라스틱 컵과 뚜껑을 버리게 되는데, 처리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분리 배출해야 할 것인가, 생분해되는 재질이니 부피가 크더라도 종량제 봉투에 담아야 할지. 종량제로 분리 배출하는 것이 가장 환경을 위해 역할을 다한 것인지. 무지함과 답답함, 죄책감으로 묶여버릴 때가 많다. 


<체르노빌 01:23:40> 책을 소개하다가 이렇게 글이 길어졌다. 인스타그램으로 짧게 적으려 했는데, 정리되지 않은 말을 줄줄 내뱉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쓰던 일이니까, 너그러이 이해해 줄거라 믿으며. 지구는 여전히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고, 딱히 수신기가 없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과 기후 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다만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한 상황인 것 같기도 하다. 환경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가지며 살아가는 개인의 태도, 실천 의지도 중요하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가 행정적으로 역할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생활 폐기물이 아닌, 산업 폐기물 등의 사태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서점을 만들며 공간 디자인과 시공을 하던 아멜리에는 폐기물을 처리할 때 마음 아파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가급적 이 상황을 만들지 않고 싶은 마음. 기후 위기 앞에서 ‘산업’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한 단어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7월 한 달간, 아주 작은 실천 계획을 세웠다. 환경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 배달 음식을 시켜먹지 않는 것. (스스로 부담감을 가지기 위해 ‘쓰레기’ 대신 ‘환경 폐기물’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나 또한 편리함과 맞서 싸워지는 편에 속하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이기는 쪽을 택하고 싶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배달 음식을 피하는 것. 이것 또한 대체재가 있다면 좋을 텐데 대부분 혼밥 또는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배달에 의존하는 삶의 패턴이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동네에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배달 음식 대신 함께 요리를 하며 이런 문제에 대해 깊게 논의해 볼 기회가 생길 것 같기도 하다. 지역에 '소셜 다이닝'이 왜 필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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