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월의 마지막 날, 하루가 남았다. 3월이 문턱 앞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이 새롭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낮에는 따뜻한 햇볕이 쌀쌀한 기운을 사라지게 해 준다. 봄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따뜻한 아랫지방에서 사는 온라인 친구들이 사진으로 올려준다. 얼마 전에는 꽃몽우리가 맺힌 사진으로 인사를 전했다.
소녀소녀 한 동기는 점심시간에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 뒤편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산책을 하다가 초록이 가득할 때면 김밥을 싸서 점심 산책을 가자 했다. 그랬던 때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곧 점심 나들이를 갈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1월을 맞이하면서 하는 무슨무슨 계획은 수첩 속에 고이 간직한 채 저장이 잘 되어 있다. 계획적이지 않은 사람이라 어떤 계획을 세웠던가를 한 번씩 확인해줘야 긴장감을 갖게 된다. 오늘은 수첩을 꺼내 못다 한 정리와 메모를 하다가 적어 놓았던 첫 장의 글을 읽어보며 그때의 마음을 떠올렸다. 대단한 마음까지는 아니어도 무언가를 해내려는 의지가 가득해 보였다.
봄이 오는 소리가 우리 집 거실에서 들려왔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온 빨간 화분에 조그만 것이 올라왔다. 20일 전쯤 집콕으로만 지내던 딸아이의 성화에 다 있다는 매장에 가서 생활용품을 구입했었다. 무언가를 가져오더니 이걸 키워서 주렁주렁 열리면 먹을 거라며 시장바구니에 넣었다.
"주렁주렁 열릴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 많이 열리면 좋겠네"라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2년여 만에 생기 가득한 얼굴로 무언가를 가져와 키우겠다는 아이였다. 그동안 귀차니즘과 코로나라는 핑계로 집콕을 2년을 했던 아이였다. 밖에 나가자고 연일 얘기하는 것도 신기한데 초록 식물을 키우겠다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오게 된 빨간 화분은 매일 정성스럽게 분무기로 물을 주고 햇볕이 드는 창가에 가져다 놓는 정성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얼마 하다 그만둘 거라 생각하고 '이건 내 몫으로 오겠구나' 생각했는데 아직 열심히 키우는 중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실 창가로 가서 화분에 물을 준다. 그 모습이 정말 생소하면서 예쁘다.
열흘이 지난 후 "왜 화분에서 싹이 나지 않아"라며 설명서에는 7~10일 후에 싹이 난다고 쓰여있는데 아직 싹이 안 난다고 성화였다. 화분을 살펴보고 화분에 충분히 물을 흠뻑 적셔주었다. 그리고 5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거짓말처럼 아주 조그만 것이 나와있었다. 처음에는 풀인 줄 알았지만 점점 커가는 모습이 어린 새싹이었다. 튼튼하게 잘 자라주었다. 씨앗을 심은 지 20여 일이 지난 지금은 조금 더 자라서 줄기가 올라왔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코로나'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외출을 하고 살았다. 아이에게 좋은 핑계와 사연을 때마침 만들어 준 '코로나'로 최소한의 외출만 하면서 칩거를 하다가 이제 겨우 밖으로 나온 아이. 그런 아이가 키우겠다며 사온 씨앗이 자라나서 식물이 되기를 나도 간절하게 바랐다. 사소한 것에 좌절할 까 봐, 다시 겨울잠 자는 곰처럼 칩거를 시작할 까 봐 걱정이 앞섰다
두꺼운 껍질을 뚫고 새싹이 자랐다.
초록색 작은 잎이 너무나 반가웠다. 아이 몰래 살펴보고 물을 주고 추울까 봐 따뜻한 곳으로 옮겨주고. 그러기를 20일이 지났다. 드디어 싹이 텄다. 이제는 조그만 새싹이 자라서 열매가 열리기를 다시 기다리고 있다. 초록색 열매가 빨갛게 익어갈 그 모습을 나도 아직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