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익숙지 않은 것

by 정아

처음 에세이를 쓴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 나는 할 수 없는 저기 저 먼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그저 내가 속한 이 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9남매의 맏아들이었고, 6남매의 맏딸이었던 아빠와 엄마. 종손은 아니었던 할아버지가 형님이 전쟁통에 나가 혈육 한 명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기에 졸지에 큰아들 노릇을 맡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종손도 아닌 아빠는 집안 행사에 불려 다녔는지 끌려다녔는지 모르지만 해마다 무슨무슨 이름으로 먼 타지로 다녔다. 버스도 다니지 않았던 시골 촌구석에서 할아버지와 큰집 큰할아버지와 같이 떠나 이삼 일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오빠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것 같은 우리 집 식구들. 고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까지 같이 4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 집안이라 집안 식구 상차림이 족히 3번은 차려져야 했다는 설이 있다.


한동네 건너 어른들은 소위 누구누구네 집 손주라고 아는 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며 공부는 못해도 인사는 잘해야 한다는 것이 늘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말.


언제부터라기보다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이란 걸 하고 내 생각이란 걸 갖게 되고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끊임없이 들어왔던 말들. 우리 남매들은 누군가가 만들어 준 '큰집 애들'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살았다. 큰집이니까, 큰집 애들이니까 뭐든 잘못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 속에 가두어버렸다.


그걸 떨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아직까지도 깨어 나오지 못한 굴레가 남아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다.

아직도 한 여름에 맨발로 신발을 신는다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


스스로의 굴레가 남아있는데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마치 민소매 위에 겉옷을 걸치지 않은 채 밖에 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에세이를 출간해야 한다고 글을 정리해서 올려야 한다며 나를 재촉하고 있다.


온전치 못한 글덩어리들이 가득하다.

오늘도 이러고 몇자를 끄적이고 있는 나를 보고 어색한 웃음이 난다.



#글쓰기 #에세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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