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의 패션은 유행이라는 것이 딱히 없고 원하는 스타일을 입으면 그만이다. 그런 시대에도 구린 패션은 존재했다. 딸아이에게 구린 패션은 엄마인 나의 패션이 대표적이다. 20살이 넘어 대학생이 된 딸아이는 요즘 패션에 관심이 생겼다.
최근까지만 해도 고등학생, 공부에 찌든 고3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트레이닝 패션을 고수했다. 고1 때 입었던 검은색 삼선 트레이닝 바지와 검은색 후드 집업이 최애 패션이었다. 거기에 운동화와 계절과 상관없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흰색 양말이 상징적인 패션이었다.
어느 날부터 집에 택배 상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택배 보관실에 택배를 어쩌다 찾으려고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상자가 우리 집 앞으로 쌓여있다. 수신인 이름은 늘 ‘이해진(가명)’이었다. 택배 상자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아서 집에 겨우 올라와 방에 내려놓고 나오면 상자만 덩그러니 거실 한쪽에 다시 쌓였다.
택배 내용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빨래 바구니에 넣어놓은 옷가지를 보면 안 보던 옷들이 나와 있었다. 택배 상자는 보지 않았어도 옷가지가 들어있었겠다 싶었다.
얼마 전 할아버지 기일을 앞두고 할아버지가 계신 곳 ‘추모의 집’에 가서 묵례를 하고 할머니를 뵈러 출발했다. 오랜만에 보는 손녀에게 할머니는 눈을 떼지 못했다. 갑자기 한마디 하는 말에 딸아이는 나만 깜빡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해진(가명)이 춥겠다. 어깨가 다 나왔어”
할머니는 손녀가 추울까 봐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을 연거푸 손으로 잡아서 올려줬다. 할머니가 쳐다보지 않을 때를 틈타서 딸아이는 어깨 아래로 옷을 끌어내렸다. 할머니는 옷이 다시 내려왔다고 올려주었다. 그렇게 할머니와 손녀의 보이지 않는 실랑이는 몇 번이나 계속되었고, 그 사실은 나와 딸아이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딸아이는 어렸을 때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학원에 다니면서 태권도를 배웠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면 태권도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치마를 입고 가는 날은 타이즈까지 벗으려면 더운 날은 힘이 들었다고 했다. 원피스는 위에서 아래까지 벗어야 하는데 그런 날은 옷을 갈아입기가 힘들어했다. 남자아이들이 있는데 탈의실이 열악한 상황이었던지 아니면 딱 붙는 타이즈나 쫄바지를 내리기가 힘들었던지 그 이후로는 치마를 입지 않았다.
치마를 입은 것은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 치마가 전부였다. 고등학교 1학년 초에 입은 후에 치마는 더 이상 입지 않았다. 입학할 당시에 공동구매로 맞췄던 교복 치마는 1학년 입학식 이후 잠시 입고 나서 졸업할 때까지 쭉 옷걸이에 얌전히 걸려있기만 했었다. 고등학교 때는 바지를 맞춰 입어서 여름에는 반바지, 겨울에는 긴 바지를 입었다. 여학교 교복에도 반바지와 긴 바지를 원하는 학생은 주문해서 입을 수 있었다.
어깨를 보이는 티셔츠 외에도 할머니와 손녀의 옷에 대한 견해 차이는 많이 있다. 마른 체형에 큰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입고 갔을 때도 그랬다.
‘애미야! 해진(가명)이 옷을 왜 이렇게 큰 걸 사줬냐? 너무 크다 “
“요즘은 그런 게 유행이에요. 옷을 딱 맞게 안 입어요.”
“유행이 참 그게 뭐냐, 옷을 몸에 맞게 입어야지”
더 이상의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42년생 할머니와 01년생 손녀의 세대 차이는 옷을 입는 것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손녀는 둘도 없는 아이였다.
할머니와 손녀의 세대 차이는 옷에서도 났지만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났다.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서 활동하다가 저녁 8시면 잠잘 준비를 하셨고, 손녀는 밤 한두 시까지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가끔 할머니 댁에 가서 잠을 자고 오자고 하면 할머니와 같이 자는데 잠자는 시간대가 다르다 보니 할머니 잠을 깨울까 봐 조심스럽다고 했다.
할머니 얘기가 길어지면 딸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다. 돌아오는 길에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얘기를 듣다가 말을 하게 되면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감정이 들어간 말을 할 수도 있어서 조심하느라 그렇다고 했다.
손녀의 생각과 다르게 할머니는 손녀딸이 말을 많이 안 하는 것이 서운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할머니에게 애교도 부리고 말도 많이 하면서 살갑게 굴었으면 하고 바라셨다. 시아버지는 아빠를 닮아서 손녀가 말수가 적다고 했다. 요즘은 할머니의 말이 길어지면 대답할 때마다 듣기 싫다는 표시가 날까 봐 조심한다는 것을 할머니는 잘 모르셨다.
결혼해서 시부모님과 같이 살았던 터라 어렸을 때 딸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을 많이 했다. 입맛도 할머니 입맛을 많이 닮았다. 직장에 간 엄마를 찾지도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잘 놀았고 밤에 잘 때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잠을 잤다. 낮잠을 잘 때도 할머니의 팔이 배 위에 있어야 잘 잤다. 할머니의 팔이 배 위에 있지 않으면 잠이 들지 않아서 뒤척이던 손녀였다.
“어머니 이제 해진(가명)이가 철이 들려나 봐요. 어머니 마음 상하실까 봐 조심하는 거래요.”
손녀가 어느새 이만큼 커서 할머니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 봐 걱정을 하고 있네요. 이제는 손녀 걱정은 그만 하시고 건강을 챙기셔요. 이런 손녀의 마음을 기회를 봐서 서운하지 않게 말씀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