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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May 27. 2021

한글이 너무 배우고 싶어

꼬불꼬불한 거, 두 개 있는 거, 그런 건 어려워!

“한글공부를 하고 싶어요, 글씨 가르쳐줘요”


어떤 게 제일 하고 싶으시냐는 질문에 대뜸 하시는 첫마디였다. 나이가 80이 훌쩍 넘었어도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고 하셨다.


“배우고 싶은데 배우지를 못했어요, 남들이 한글 모른다고 무시할까봐 어디다가 말은 못하겠고 그냥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데 잘 안 돼요”


글을 모른다는 말을 자식들에게조차 할 수가 없어서 아무도 당신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른 건 안 어려운데 그거 있잖어, 꼬불꼬불한 거, 두 개 있는 거, 그런 건 어려워!, 이런 건 아직도 잘 못 읽어”


두리번거리다 책을 펼쳐서 가리킨 것은 받침글자로 두 개의 자음으로 된 받침글자 ‘ㅀ’, ‘ㄼ’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안방 작은 상 위에 달력위에 볼펜 한 자루가 있었고, 뒷면 하얀 쪽에 연필로 적은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공부하시고 계셨냐는 한마디에 깊숙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요즘은 주민센터에서 뭐라도 신청하려면 내가 적어야 할 게 많은데 누구한테 적어달라고 하면 내가 글을 모르는 것이 들통 나잖어”
“그럼 사람들이 그때부터 날 무시할거 아냐, 그래서 매일 이렇게 연습해, 안 잊어버리려고”


진짜 글씨를 배우고 싶었는데 그게 한이 되었다고 했다. 다른 애들은 야학에라도 가는데 그 옛날 천막 쳐놓고 글씨를 가르쳐주던 그런 곳이 있었단다.

꼬불꼬불한 거 두 개 있는 건 어려워


“거기에도 나는 갈 수가 없었어. 애를 봐야 했거든”
“맨 날 나는 애를 업고 동생들을 봐야했어, 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 나는 동생을 봤지”
“언제부턴가 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서 애를 업고 매일 학교에 갔어”


  어깨 너머로 배운 한글 실력으로 간판을 읽어 내려가고, 안내문이 오면 읽어보고 하신다며 으쓱해보이셨다.


“창문 옆에 서성이며 애들 책 읽는 소리가 들리면 따라서 외웠어, 하늘 천 따지, 등에 업힌 아이가 울면 궁뎅이를 토닥거리면서, 시끄럽다고 가라고 할까봐 조용히 작은 소리로 따라서 공부를 했지,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고 


한글공부에 집중한 모습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 전쟁이 터졌어, 아버지가 나갔다 들어오시더니 시집가라고 하시는 거여”
“여자를 다 잡어간댜, 그런게 내일 바로 시집가거라”


아버지 말씀이 무서워서 얼굴도 못보고 누군지도 모르고 다음날 가라는 데로 가니까 남편이란 사람이 있었다며, 옛날엔 다 그렇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사느라 공부할 새가 어딨어, 맨 날 일하고 밥하고 애 키우고 그랬지”
“난 평생의 한이여, 나를 공부시켰으면 내가 이렇게는 안살 거 아녀, 그래도 그때 옆에서 주워들은 걸로 글씨를 조금은 읽을 줄 알어”


  달력 뒤에 써놓은 것도 보여주고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받침이 있는 글씨를 보여주며 ‘그런 거는 어려워서 못 읽는다며, 꼬불꼬불한 거, 두 개 있는 거, 그런 건 너무 어려워’라며 그런 거 빼고는 어지간한 건 다 읽는다고 했다.


  요즘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한글을 떼고 구구단을 외우고 영어로 말을 한다. 연필, 지우개, 공책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예뻐서 구입한다고 한다. 분리수거하러 가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 버려져있다.


  열심히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이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나에게도 저렇게 열정이 넘치는 적이 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한참을 기억 속에 잠겨보았다. 냄비처럼 금방 뜨거워졌다가 어느 순간 빠른 속도로 차갑게 식어버리는 ‘냄비 같은 열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정리를 미루다가 하게 된 책장에서 나온 사용하지 않은 연필, 지우개, 공책이 상당했다. 수북이 어지럽게 널부러진 문구류를 버리지 못하고 거실 한쪽에 쌓아두었다. 어르신이 생각나서 모두를 모아놓았다. 가져다 드리면 잘 사용하실 텐데 버리기가 아깝다.


  거실 한 쪽을 무심히 바라보다 발견한 문구류가 나를 보며 말하는 듯 했다. 다음에 찾아뵐 때 가져다 드리겠다며 시선을 외면했다.


  2020년에 시작된 노인맞춤돌봄서비스에는 여러 가지 서비스내용이 65세 이상 노인에게 제공되는 노인복지서비스다. 서비스 내용에는 안전지원, 사회참여, 생활교육, 자원연계, 특화서비스가 있다. 한글공부는 생활교육 영역의 인지활동에 해당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노인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인지활동에서 어르신들에게 한글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르신을 처음 만난 건 2020년 봄이었다, 1년여가 지난 지금도 어르신은 한글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꼬불꼬불 어렵다던 두 개 받침글자도 잘은 아니더라도 읽을 수 있게 됐다. 다음은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글공부 #노인맞춤돌봄 #노인 #인지프로그램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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