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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하 May 28. 2021

너는 날 닮아서 시들시들 한 거니?

쑥쑥아 미안하다, 아프지 말고 쑥쑥 자라 거라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진행 전 선정조사 상담을 위해 어르신을 방문했을 때 우울하다고 말을 하지만 자신의 우울증은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 비슷한 말씀을 하시며 우울증이라고 하면 격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처음 경미한 상태에서는 "그래도 내가 좀 우울한 것 같아, 마음이 좀 거시기 할 때가 있지, 이런 게 우울증이라고 하면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지" 라고 말씀하셨다.


노인우울척도검사 결과에서 총 15점 중 11점 이상으로 우울점수가 중증우울로 나타났는데도 대부분 대상자는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난 우울증 없어, 내가 환자여?, 그런 거 하려면 다음부터는 오지 마!”

“나한테 그런 말 하려면 난 이제 이런 거 안 할 거여”

“난 글씨 같은 거 쓸 줄 몰라, 나보고 이런 거 하라고 하지 마” 

   

오늘은 반려식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거라고 얘기하니 호통을 치며 안하겠다고 했다. 준비물을 하나 둘씩 꺼내놓고 ‘안하시면 대신 해드리겠다’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슬그머니 네임펜을 손으로 잡으셨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뭐라 할지 모르겠다며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혼자 말처럼 “우리 손자 이름이 영희, 철수여” 라며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이름을 지어내는 것도 그 이름에 대한 사연도 모두 다르다.    


“우리 손주들이 미국에 있어서 이름을 자주 못 불러, 그렇게 손주 이름으로 해야겄네”

“나는 애들이 잘되면 그것으로 됐어, 애들이 먼저지, 아들 딸 이름으로 지어줄 거여” 

   

처음엔 안한다고 뒤돌아서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버님은 그렇게 손자들 이름을 불러주었고, 자녀들 걱정에 늘 자식 이야기만 하던 어머니는 아들, 딸 이름을 붙여주며 정겹게 불러줬다.    


“야는 나 닮아서 시들시들 한가벼, 물도 잘 주고 햇볕도 쐬어 줬는디, 왜 시들시들한 건지 모르겠네, 너는 날 닮아서 시들시들한 거니? 쑥쑥 잘 자라라고 ‘쑥쑥이’라고 지어줄게 쑥쑥 잘 자라 거라” 


최근에 몸이 아파서 고생하시는 어머니는 '화초가 아픈가봐'라며 자신을 닮아 그런 것 같다고 물도 더 잘 주고 햇볕도 잘 쐬어서 튼튼하게 잘 키우겠다고 이름을 쑥쑥이, 튼튼이로 지었다.

   

2020년 1월에 처음 만난 어르신은 건강하게 웃음으로 맞아주고 집에 온 손님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벗으면 안되기에 아무것도 안줘도 된다고 했지만 극구 “그냥 가면 내가 화낼거여, 다신 오지마!”라며 뒤따라 나와서 차에 오른 내 에 요구르트를 쥐어 주었다.   

  

작년 봄 예쁜 미소로 맞이했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근래에 찾아갔을 때는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겨우 입가에 미소만 살짝 띄운 모습이었다. 2021년 초에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 후 집에 돌아와서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한 달간 입원했다가 자녀 집에 머물다 돌아온 어르신은 처음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할 때만 해도 “내가 무슨 노인이라고 이런 서비스를 받아, 나 아직 멀쩡혀, 아직도 정정해”라며 장담했다. 그때의 건강한 목소리와 밝은 얼굴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우울감이 높아지셔서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다며 이웃이 오는 것도 마다했다고 했다.

 

어르신을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프거나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마음이 너무 편지 않다. 일 년 넘게 겪어본 바에 의하면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경우에는 연령이 높은 노인들은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우울감이 높아져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며 갑자기 삶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거나, '자녀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아픈 것조차 미안하다' 자녀에게 알리기를 꺼려하고 숨기는 경우도 많았다. 절대 연락하지 말라며 재차 삼차 확인을 받아야 안심을 했다.

    

노인돌봄서비스 대상자 중에서 우울증검사 결과를 토대로 우울대상자를 선정하여 우울예방프로그램을 8회기에 걸쳐 진행하기로 했다. 우울예방프로그램은 한국형노인우울척도간편검사(K-SGDS) 결과 총 15점 중에 6-15점에 해당하는 경증, 중증우울증 대상자에게 3월 말부터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첫 회기를 시작하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상자 중 단 한명이라도 웃음을 찾을 수 있고, 돌아섰던 대상자가 관심을 보이고 돌아 앉아 참여한다면, 그 단 한명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회기를 진행하고 나니 많은 분들이 조금씩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화초에 이름붙이기를 시작하니까 전에는 싫다며 뒤아섰던 분도 ‘뭘 이런 걸 다 하냐’며 핀잔섞인 말을 했지만, 손은 이미 네임펜을 들어 글씨를 적고 있었다. ‘내가 환자냐’고 화를 냈던 분은 손자가 보고 싶다며 손자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울증이 심해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했지만 지금은 "이거 없으면 어쩔 뻔 했어, 요즘은 이거(화초) 보는 재미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지"라고 말했다.


"집에 오는 것은 싫으니까 그냥 전화만 하면 안 돼"라고 했지만 지금은 30분 동안 함께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르신들이 거듭되는 회기마다 점점 더 참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길 바랐다. 오늘 하루 어떤 분이 다쳤거나, 병원에 입원했다거나, 위급상황이 발행하지 않은 것에 감사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한 주를 끝마쳤다. 오늘도 대상 어르신들이 더 나빠지지 않고 현재 상태의 건강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쑥쑥이의  모습 -이파리가 축 처진 모습이 안쓰러움

#노인우울증 #우울증 #우울예방 #우울예방프로그램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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