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점심시간을 교차로 사용해서 일찍 식사를 하게 됐다. 식사를 마치고도 시간이 넉넉해서 같이 일하는 동기와 커피숍에 갔다. 시원한 곳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한산했다. 업무 배정을 받아 서로 다른 팀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게 된 우리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걱정과 다짐을 주고받았다.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전환되었다. 나이가 다르게 되어 있는 나와 동료는 사실상은 같은 나이였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빠른'과 '늦은'의 생일이 주는 혼선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난 달이 음력 12월 말경에 태어나다 보니 출생신고가 늦어져서 한 살 어리게 되어 있어요"
"그때는 그런 사람 많았잖아요. 나도 언니랑 나이 차이가 두 살인데 학교는 같이 다녔어요. 그럼 우린 나이가 같은 거네요"
"그러네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비슷한 또래가 있는 것이 힘이 되네요.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 잘해봐요"
우리는 이렇게 같이 친구가 되었다. 업무파악을 하는 과정과 교육내용을 공유하고 새롭게 맡게 될 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다가 다시 사적 공간의 세계로 대화는 흘러갔다.
"어둑어둑할 때였으니까 한 7시 반 정도? 나는 태어난 시를 잘 몰라요. 그때는 집에서 출산을 하다 보니까 시계를 보지 않고 '언제쯤'이라고 했어요. 엄마가 '저녁에 해가 어둑해질 때였는데 여름이었으니까 저녁 7시 반쯤일 거야'라고 알려줬어요"
"나도 그런데요. 예전에 '나는 몇 시에 태어났어요'라고 엄마만테 물었더니 '아침 먹고 상 치우고 개 밥 줄 때쯤 태어났으니까 8시에 태어났을 거야. 겨울이라 아침을 천천히 먹었지 아마?'라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진짜 그때는 우리만 그랬나? 나는 8남매인데 다 태어난 시를 모르시고 애매하게 말해주셔서 새벽 1시 경계에 걸리는 사람은 '자시'인지 '축시'인지 결정하기가 애매하다고 했어요. '오늘의 운세'나 이런 걸 볼 때 언니는 운세가 잘 나온 쪽으로 그때의 시를 정하더라구요."
"신기하다. 그때는 그런 집이 많았나 봐요"
"요즘은 병원에서 시간만 알려주겠어요. 분, 초도 딱 맞춰서 말해줄 걸요?, 우리가 같이 일하는 20대 30대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아마 이런 얘기하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거예요"
"세대차이 난다고 할까 봐 조심해야 할까요?"
근처에 병원이 없었던 어렸을 적에 경기로 사경을 헤매던 나를 들쳐 업고 아빠는 한밤중에 옆동네 침을 놓는 아저씨네로 뛰어갔다고 했다. 그렇게 침을 맞고 호흡이 돌아와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했고 혈색이 돌아와서 살아났다고 했다. 그날 아빠의 발은 엄동설한에 맨발이었다고 엄마는 말해줬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그럼에도 우리의 이야기는 진지하고 또 진지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디 멀리 산골 깊숙한 곳에서 지도에도 없는 그런 곳에서 살았던 것처럼 보였다. 사실 우리 둘은 정말 병원이 멀리 있고 산파 아주머니가 아이를 받았던 그런 시골 출신이었다.
동기는 언니와 두 살 차이가 나지만 학교는 언니보다 먼저 들어가서 자기가 언니보다 학교 선배라고 했다. 예전에는 그런 일이 많았었다. 중학교 친구는 나이가 세 살이나 많았지만 3학년이 돼서야 그 사실을 알았기에 우리는 친구로 지냈다. 지금도 "ㅇㅇ야"라고 부르는 친구 사이다.
같은 시대에 살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았던 우리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땐 그랬지'라던지 '라떼는 말이야'라고 말해도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참 다행이다. 일을 하면서 비록 서로 다른 팀에 속해 있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또래 동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