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얗고 푹신한 가루의 변신

모락모락 훈김 나는 시루떡

by 정아

며칠 전 출근했는데 누군가가 떡을 돌렸다. 좋은 일이 있던지 그 반대이던지. 하여간 어떤 일을 크게 치르고 나면 찾아와 주고 인사를 건넨 사람들에게 답례의 인사로 간식을 샀다.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다.


떡을 받고 나니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혹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 사람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한 사람은 바로 포장을 열고 맛있게 떡을 먹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남에게 넘겼다. 떡 2개가 생겼다.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이 됐다.


그렇다고 떡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 축에는 끼지 못한다. 떡이라는 음식을 잘 먹게 된 지 얼마 안 된다. 어렸을 적에는 대체로 떡은 먹지 않았다. 명절이나 어른들 생신상을 차릴 때와 제사를 지낼 때 할머니는 떡을 많이 만들었다.


대야에 한가득 흰 쌀을 담가놓은 게 보이면 그건 집안 대행사가 며칠 내로 있다는 표시였다. 물기를 쏙 뺀 쌀을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건너 마을에 있는 방앗간으로 갔다. 한참이 지나면 대야를 다시 머리에 이고 나타나서 대청마루에 '탁'하고 내려놓았다. 퉁퉁 불은 흰쌀은 뽀얀 가루로 변해서 돌아왔다.


뽀얀 쌀가루를 가마솥에 시루를 내다 걸고 하얀 밀가루 반죽을 골고루 붙였다. 가마솥에 장작을 넣고 불이 활활 타오르면 가마솥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한 줄, 두줄, 세줄..


점점 많아져 훈김이 가득 찰 때쯤 할머니는 넣었던 장작불을 빼내고 잔열만 남겨놓았다. 한 김이 빠져나간 가마솥 위에 밀가루 반죽으로 붙여두었던 시루가 떨어질 때가 다가왔다.


할머니는 떡을 하는 동안에는 화장실을 가면 안 된다고 했고, 그 말을 듣고 나면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다. 사실은 할머니 몰래 화장실에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보는 시늉을 했다.


어느새 떡이 다 되었는지 넓게 펼쳐진 곳에 시루를 뒤집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옆쪽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떡이 설익은 데가 있네. 누가 화장실 다녀왔냐?"

"...."

"아뇨, 아무도 안 다녀왔어요."

"이상하다. 떡이 설익었는데.."


엄마의 말에 나는 안도를 했다. 할머니한테는 비밀이 됐다. 시골에서 시루떡을 만들 때면 화장실에 다녀오면 안된다고 했다.

떡을 앉힐 때 화장실에 다녀오면 부엌에 들어가지 못했다. 할머니는 떡이 설익는다며 아예 얼씬도 못하게 했다. 왜 그런 말이 있는지, 화장실과 떡이 익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 떡이 설익은 게 화장실에 다녀온 나 때문 인지 물의 양이 잘못된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할머니는 넓게 펼쳐진 쟁반에 떡을 엎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네모 반듯하게 썰었다. 상에 오를 정사각형의 떡은 따로 잘 보관해두고 나머지 가장자리 떡은 다시 최대한 반듯하게 정리해서 먹게끔 담아주었다. 어른들에게 접시를 들여보내 난 후 할머니 옆을 지키고 있던 나에게 떡 한 줌이 훅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 하거라."

"아~"


금방 해서 뜨끈하고 포근한 떡 한 덩어리가 입속으로 쑥 들어왔다.


'그래 바로 이맛이지!'


한참을 부엌에서 할머니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기다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오물거리는 내게 떡 한 줌을 더 먹여주셨다. 그때 먹여줬던 떡의 맛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었다. 제아무리 맛있고 비싼 떡이라도 그 맛이 아니었다. 특별했던 그 맛은 더 이상 없었다.


인절미떡 사진 픽사베이



돌림 떡 한 상자 덕에 예전의 떡 맛이 생갔났다. 다시 먹고 싶다. 요즘도 명절이나 집안 제사가 돌아오면 노란 고물을 켜켜이 넣은 시루떡을 사 갔다. 김은 모락모락 나지 않고 색깔은 예전보다 샛노랗다. 하얀 쌀이 뽀얀 가루로 변신해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훈김 속에서 보이던 하얀 속살을 담고 있던 노란 시루떡이 되었다. 그 과정은 같았다.


할머니는 그랬다. 할머니의 간식 단지에 있는 곶감이나 알사탕, 알록달록한 줄무늬 사탕을 가끔 하나씩 꺼내 주시곤 했다. 할머니의 간식 항아리가 특별했다.


무언가를 코앞으로 불쑥 내밀며 말씀하실 것 같다.

"아~크게 해 봐!"


항아리 사진 픽사베이


#시루떡 #할머니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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