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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딜김 Apr 10. 2021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고 싶은 이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고 생각한 것

나는 나쁜 표현 중독자다. 나는 지저분한 문장을 구사한다. 물론 전문적으로 글을 교정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아직은 '잘 쓰는 것' 보다 '일단 쓰는 것',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끄러운 글을 쓰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공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 잘 읽히는 글을 쓰는 것 보다는 표현을 '시작'하는 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내가 쓰는 글이 조악하건 매끄럽지 못하건 간에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시도를 반복하는 이유 또한 그렇다. 적어도 일상적으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표현이 우선이고, 다듬는 일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나 단순히 매끄러운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은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자신의 문장 습관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자신이 무의식 중에 사용하던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표현들을 곱씹어보게 되고, 어떤 문장 형식을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된다.



완성도 높은 문장을 구사하고자 하는 목표가 없더라도 자신의 글쓰기 습관을 한 번쯤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언어와 생각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표현할 언어를 찾다 보면 여러 교묘한 어감 중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아 헤매게 되고, 그전까지는 모호했던 개념이 조금 더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려는 시도 자체가 생각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글 쓰는 습관을 다지는 일은 곧 생각하는 습관을 다지는 일과 같다. 그래서 더 나은, 더 분명한 표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표현을 고집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언어에 불필요한 표현이 끼어들어 생각이 혼탁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나 스스로도 발전시키지 못하는 나의 생각을 언어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의 저자가 말한 '내 문장 속 군살 빼기'의 과정은 곧 생각의 군더더기를 빼는 과정이다. 단순히 내 생각을 더욱 '그럴듯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포장재나 완충재를 덧대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생각의 알맹이를 전달하면 그걸로 충분한데, 단순히 형식적이라는 이유, 혹은 조금 더 지적으로 보이는 언어라는 이유로 날카로웠던 핵심을 무디게 만들어 전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문제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쓰는 데 있다. 어떤 표현은 한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된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니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편리함의 중독자인지 살피라는 것뿐이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p.22


저자가 말하는 '적, 의, 것, 들'이 바로 문장의 대표적인 군더더기다. 사실 나는 저 네 가지를 빼면 문장을 쓰지 못하겠다. 지금 이 글에만 벌써 몇 개 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 네 가지가 '안 써도 상관없는데 굳이 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최대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싶어졌다. 안 써도 의미 전달이 되고, 심지어는 안 써야만 의미가 더 명확하게 전달이 되는 경우도 있다.


"회원들로부터 정기 모임 날짜를 당기라는 요청이 있었다."
'회원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가 부담스러워서 '요청이 있었다'라는, 주어와 술어를 갖춘 절을 굳이 만든 것일까? 그렇다면 글쓴이는 설령 문제가 되더라도 요청을 한 회원들이 아니라 '요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태도를 은연중에 드러낸 셈일까? (중략) 이런 게 이른바 '쿨한' 문장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그저 객관적인 사실을 전할 뿐이라는 태도.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p.52~53


이전에도 글을 썼던 '~인 것 같아요'도 위와 유사한 경우다. 주어를 생략하고 책임을 피하는 태도 역시 핵심을 뭉뚱그리는 습관, 명확한 표현보다 완곡한 표현을 더 중요시하는 습관을 반영한 결과다. 완곡한 표현을 지속하다 보면 문장에 담긴 날카로운 핵심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핵심이 중요하지 않다면 사고를 발전시킬 이유가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 지적인 글을 쓰려는 시도보다는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익혀 온(혹은 요구받아 온) 글쓰기란 사실 한자어나 그럴듯해 보이는 언어로 범벅된 글쓰기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억지로 명사형을 만드는 것, '대한' '인한' 한자어를 사용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나 역시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치고 대학교 과제나 기타 등등을 거치면서 생각을 더 명확하게 표현하는 법을 깨우쳤다기보다는 더 지적으로 그럴싸해 보이는 결과물을 내는 요령만 터득했을 뿐이다. 지적인 언어로만 표현한 글은 사실 현학적인 인상 그 이상의 것을 낳지 못하고 알맹이를 가릴 뿐이다.


내 생각을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결국 생각을 더 날카롭게 다듬기 위한 과정이다. 사고 과정은 언어에 반영되고, 언어는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언어 습관은 잘못된 생각 습관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반대로 올바른 언어 습관은 더 분명하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스로가 형식의 편리함에 중독되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언어 습관이 나를 어떻게 길들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형식이라는 도구를 빌려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생각을 맞추는 모순적인 꼴은 낳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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