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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꾸 Sep 25. 2020

짜파게티를 만들 다 짜장면 생각

장의 이야기

 집에 3년 전에 유럽 구경 좀 하겠다며 놀러 온 언니가 겸사겸사 잔뜩 사다 준 우리나라 식품 중에 오뚜기 짜장 분말 20인분 2kg이 있다. 물론 유통기한은 지났다(이건 남편에겐 비밀이다). 자주 해 먹는다고 해도 2kg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포장에 20인분이라고 씌어 있듯이. 먹어도 먹어도 안 준다. 요즘은 말 그대로 '짜파게티'를 자주 해 먹는다. 잘게 썬 마늘과 파와 마른 고추에 기름을 넣어 향을 내고 채소는 좀 큼직하게 썰어 볶아 준다. 고기를 넣을 때도 있고 두부를 넣기도 한다. 그리고 물을 넣고 커다란 감자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끊이다 짜장 가루만 넣어 주면 되니 정말 간단하다. 면은 정말 스파게티. 건조한 스파게티보다 좀은 비싼 생스파게티를 넣는다. 그럼 짜장면집 면하고 맛은 좀 다르지만 굶기는 비슷한 모양이 된다. 그러니까 정말 말 그대로 '짜파게티' 다. 


 서울 우리집에는 전화하고 끊고 나면 거짓말처럼 딩동 하는 벨소리가 났다. 그렇게 겁나 빨리 오는 짜장면집이 가까이 있으니 아무리 간단해도 서울 우리집이라면 짜장면을 시켜 먹겠다. 그리고 물론 중국집 짜장면이 훨씬 더 맛있다.  내게 소울푸드라고 부를 만한 건 짜장면과 떡볶이 이 두 가지다. 특히나 짜장면은 이런저런 추억이 너무 많아 책을 한 권 써도 될 만하다. 


  오늘 유난히 기억나는 사람. 그 친구의 이름에는 '장'자가 들어갔던 거 같다. 국민학교 3학년 때 우리반 친구. 장네 집은 짜장면집이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맨 뒤에 '원'자가 들어가는 중국집이지만 우린 짜장면집 아이라고 불렀다. 장에게는 동생이 둘이 있었다. 가끔 이 친구네 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그러면 이 친구는 짜장면을 대접했다. 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짜장면 국수를 뽑을 수도 있어!" 국민학교 3학년 주제에 짜장면 국수를 뽑다니.....! 따끈따끈한 짜장면을 커다란 꽃그림이 있는 쇠 쟁반에 날라다 갔다 주면 장의 어린 동생들과 우린 장판 바닥에 상도 없이 앉아 숨도 안 쉬고 단숨에 먹었다. 기름진 그 달콤한 검은 소스에 갓 뽑은 면발은 거의 씹을 필요도 없이 넘어갔다. 언제나 그랬지만 양이 너무 적었다.  짜장면은 곱빼기로 먹어야 하는 건데....

  그러던 어느 비가 많이 오던 날 장은 학교에 지각을 했다. 둘째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뒷문을 열고 들어온 장은 우산이 없었는지 비를 흠뻑 맞아 젖어 있었다. 안쓰럽게 장을 쳐다보던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기억이 난다. 수건을 가져다 젖은 장의 머리를 닦아주던. 장은 동생이 아파서 같이 있다 오느라 늦었어요 했다. 선생님은 장의 물기를 닦아주고는 가서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장은 전학을 갔다. 

  나중에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서 들음직한 3류 소설 같은.. 장의 짜장면 집은 우리 동네서 유명한 집이었다. 정말 짜장면이 맛있었으니까. 단골이 엄청나게 많았다. 덕분에 장의 아버지는 사업을 확장하느라 다른 곳에 짜장면집을 한 곳 더 냈다. 그리고 이곳은 젊은 아내에게 맡겼다. 난 장의 엄마 얼굴을 모른다. 어른들 말로는 장의 엄마는 당시 20대 중반을 겨우 갓 넘은 나이였다고 한다. 막내를 업고 짜장면을 손님에게 날라주던 곱상하게 생긴 작은 여자. 그 젊은 엄마가 주방장과 눈이 맞아 가게를 저당 잡혀 빚까지 지게 하고는 모든 현금을 가지고 도망을 갔고 장의 아버지는 그 '년놈'을 찾으러 다니느라 가게들을 다 닫았고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남자에게 미치면 자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나 보다 하며 혀를 끌끌 차던 어른들의 이야기. 

 장의 엄마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열정은 상식을 벗어 난다......


 나에게는 장의 잔뜩 비 맞아 축 처진 짧은 커트머리와 짜장면을 만들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반짝이던 눈동자만 교차되어 기억난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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