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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꾸 Dec 19. 2020

다시 읽는 이상의 날개

조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 ‘박제된 천재’를 알고 있니?

 어릴 적 이모들은 김유정과 이상을 참 좋아했어. 겨울밤-어쩜 낮에도 그런 것 같지만 꼭 밤이어야 그게 더 맞는 듯이 느껴져-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1930년대 소설을 읽었는데 김유정과 이상이 같은 시대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이 친구 사이였다는 걸 새삼 재미있어 하며 이야기를 하곤 했어.  지금의 너와 같은 중학교 1, 2학년 시절 이모는 글자 읽는 걸 너무 좋아해서 화장실에서 읽을거리가 없을 때는 샴푸 뒤에 붙은 사용 설명이라도 읽어야 할 정도였어. 아마 넌 지금 너의 핸드폰을 가지고 그렇지 않을까 싶네.  그 시절 난 이상의 뭔가 있어 보이는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 분위기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  지금 너의 세대 아이들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이상의 책을 읽으며 멋지다고 하면 내가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30여년 지나 다시 이상의 「날개」를 읽었어. 이상은 1910년에 태어나 1937년 죽었으니 30세도 안 넘어 죽은 말 그대로 요절한 '박제된 천재'라는 책의 첫 구절에 딱 맞는 사람이야. 벌써 100년도 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니 놀랍지 않니? 이상은 26살에 이 책을 썼어. 1936년에 발표 되었고 자전적 소설이라고 이야기되는 이 책 속에도 그의 나이 이야기가 나오니 맞을 거야.  네가 요즘 소설을 많이 읽는다면 이젠 이런 유의 소설이 많아서 그의 소설이 그렇게 센세이션 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지도 몰라.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 소설은 ‘자의식 문학’이니 ‘초현실주의’니 하며 커다란 논란거리였어.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중얼거림'. 머릿속에 있는 걸 고스란히 표현해 내고 있어.  



  

  좋은 소설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니까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이모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인간의 성정’을 잘 표현해 주는 책이지 않을까 해.  20대 중반의 작가가 쓴 30년대 소설이 2020년 인 지금 읽어도 이모에게 여전히 울림을 주는 건 그의 글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여전히 내게도 동질감을 주기 때문이지. 그리고 물론 재미를 주어야 하는 건 기본이겠지.  이모는 아래 글을 읽는데 조금 섬뜩했어.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 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는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 보다. 돈이 왜 없냐면서…….

 너도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니? 이모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이런 식의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로또를 산적도 몇 번 있지. 이 소설의 '나'는 아내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주고서야 아내의 곁에서 잠을 잘 수 있었어. 그리고 나서야 돈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게 되지. 아내가 '내객들'을 위하여 일을 하고 받은 돈 중 미안해 서였는지 아니면 남편이 애처로워 보여 서였는지 머리맡에 은빛이 도는 동전을 두고 가면 ‘나’는 벙어리에 돈을 모아. 그리고 한 번은 그걸 변소에 버릴 정도로 돈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던 사람이었지. 그러던 그가 돈을 쓰는 기쁨을 알게 된 거야. 아내에게 받은 돈을 아내에게 다시 주고 그 옆에서 잘 수 있는 기쁨. 우리는 왜 돈을 벌까?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해. 잠잘 곳이 있고 먹을 것도 풍족하고 입을 옷을 살 정도의 돈을 벌어도 그보다 좀 더 많은 돈은 벌기를 원하지.  텔레비전을 켜거나 인터넷을 열면 여기저기서 내가 가진 것보다 좀 더 좋아 보이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그럼 나도 저걸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서 실상 필요한 것도 아닌데 자꾸 갖기를 원하고 사기를 원하지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니까 하기 싫은 일도 더 해야 하기도 하고. 이 책에 나온 ‘나’는 돈을 버는 일은 안하고 머릿속으로 ‘연구’만 해. 어쩜 네가 보기에 그가 많이 게을러 보일 지도 몰라. 한 마디로 ‘백수’지. 왜 그가 일을 안 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아마도 병약해서 인 것 같아. 작가인 이상은 건강이 안 좋아서 직장을 관두고 요양을 떠나기도 했다고 하니 이 책 속의 ‘나’가 이상이라고 전제한다면 왜 그런지 짐작이 가기도 해. 소설 속의 ‘나’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맞지 않는 너무 순수한 사람으로 보여. 여리고 작은 새.  




 

 이 책에는 재미있는 표현도 많이 나와. 예를 들자면 ‘맛이 익살맞다’ 이런 말을 상상해 본적이 있니? 맛이 익살맞다니. ‘맛’이라는 단어에 ‘익살’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릴 적 읽을 때는 이 책에서 어두운 면만이 보였어 하지만 지금 다시 여러 번 읽으면서 그 표현들에 위트와 패러독스가 느껴져.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해 보라고 추천을 하기도 해.  너무 유쾌한 제안 아니니?  

  이 책에 나오는 공간적 배경은 서울 4대문 안이야. 지금의 종로3가, 명동, 서울역 부근이지. 물론 그 시절과 지금은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긴 했어도 책을 읽고 그 곳에 간다면 그 공간들이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질 거야. 책 속에 나오는 그 시절의 ‘티룸’은 이젠 없겠지만 그 부근에서 ‘나’처럼 커피를 마셔볼 수 는 있겠지. 네가 직접 이 책을 읽어보고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 해주었으면 해. 이모가 느끼는 ‘나’와 네가 생각하는 ‘나’는 분명이 다를 거야. 이모는 내용을 미리 알고 책이나 영화를 보는 걸 아주 싫어해. 그럼 읽는 재미가 많이 삭감이 되거든. 너도 그럴지도 모르니 이모가 더 구구절절 이 책에 대해서 설명해서 너의 느낌에 선입견을 주거나 읽는 맛을 떨어트리고 싶지는 않아.  너 나이 때에 이 책에 빠져있었는데 30여년 지나 다시 읽으며 또 다시 이 책에 푹 빠져 있다니.  아. 너와 같이 서울 중심가를 걸으며 이상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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