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서 이사 이야기
우리의 첫 보금자리. 지은 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나름 새 아파트. 우리나라의 새 아파트라면 내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모를 만한 이런저런 편리하지만 익혀야 하는 기능이 산재해 있지만 내가 벨기에에서 살았던 우리 아파트는 인터폰 기능은 있었지만 비디오 인터폰이 아니라 누가 밖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왜 이 곳 부동산 사이트에서 아파트 월세 광고에 비디오 인터폰까지 달려있다고 강조해 가며 선전하는지 이해가 갔다.
벨기에에서 월세를 얻으려면 부동산업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기본은 최근 3개월치 급여명세서, 재직증명서, 그리고 질문지가 있다. -왜 이사를 하려고 하는지, 직전에는 얼마나 월세를 냈는지 등등을 묻는- 가끔은 집주인과 인터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집을 구경하고 마음에 들어 지원을 하면 서류를 내라고 하는데 거절을 당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이유가 맞벌이가 아니라서이다. 월세 보증금은 3개월치이기에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독립을 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물론 월세 비용이 만만치 않긴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보통 월수입의 3분의 1은 집세로 책정한다. 거기다 화재보험료도 세입자가 내야 하고 보일러 점검도 2년에 한 번씩 해야 하고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더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세입자가 해야 한다. 집주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은 이사를 가기 전에 체크해서 이것저것 비용을 요구하기에 보증금을 다 돌려받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입주하면서 사진을 잘 찍어두어야 한다. 그걸 제대로 해주는 부동산도 있지만 보통 부동산은 장기 고객인 집주인 편이다. 플란더스 지역에서 두 번 이사를 했는데 보증금을 돌려받는데 두 번다 4개월 걸렸다. 이 곳 사람들의 일처리 방식은 아주 느긋하다. 그래도 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없기는 한 게 보증금을 집주인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보증금을 보관해주는 기관이 따로 있다. 이것저것 하자가 있으니 그걸 감액하고 받겠다는 서류에 세입자가 동의를 하고 집주인도 사인을 하고 나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으니 진행을 빨리하는 여부는 부동산의 몫이다.
집이 비어있는 상태라면 보증금만 미리 지급을 하면 계약 날짜보다 일찍 입주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계약 날짜보다 10일 전에 열쇠를 받아서 틈틈이 이사를 했다. 깨질만한 물건이나 승용차에 들어갈만한 것들은 미리 옮겨 놓고 커다란 가구만 차를 빌려서 이사를 했다. 이사업체를 통해서 이사를 할 수도 물론 있지만 포장이사는 감히 상상도 못 하고 이사업체를 통한 이사도 짐은 당연히 우리가 미리 싸놓고 당일날 짐만 옮겨주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인지 이 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 옛날처럼 차만 빌려서 이사를 간다. 유럽에 살면서 자동적으로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무엇을 자꾸 사면 이사할 때 정말 짐이 짐이 된다.
이사를 하고 나면 제일 먼저 시청에 등록을 한다. 그리고 전기와 가스요금 회사를 정한다. 회사마다 계약방식에 따라 금액이 조금씩 다르다. 우리는 복잡한 걸 싫어하니 별로 따지지도 않고 가장 큰 회사의 매년 계약으로 했다. 매달 정액으로 요금을 내고 1년 뒤에 쓴 용량에 따라 정산을 해서 돌려받기도 하고 더 내기도 한다. 수도는 지역마다 관할 회사가 따로 있고 쓰레기를 버리는 방식도 지역마다 다르다. 처음 살던 지역은 1년에 정액으로 환경세를 55유로 내고 나머지는 용량제로 냈고 재활용 쓰레기봉투는 슈퍼마켓에서 구입했다. 두 번째 지역은 우리나라처럼 종량제 봉투를 슈퍼마켓에서 사서 버리는 방식이었다. 두 개를 비교하자면 쓰레기를 거의 안 만들려 노력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종량제 봉투가 경제적이긴 하나 첫 번째 지역의 방식이 좀 더 내겐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고 본다. 커다란 쓰레기 트럭에 쓰레기통을 넣으면 무게가 자동 측정되고 1년에 2번 쓰레기 요금을 낸다. 청구서에 총사용량이 얼마였는지를 보여주고 평균 가족명 수당 쓰레기 사용량을 나타내 주어 비교할 수가 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이사가 끝나고 대략 마무리가 되고 10여 일이 좀 지났을 무렵 어느 저녁 '찌이익'하는 벨소리. 그 아파트의 벨소리는 굉음을 내서 언제나 깜짝 놀라게 했다. 덩치 좋으신 여자 경찰관님. 성큼성큼 우리 집 아파트 안으로 들어온다. 한국인인 나는 집안에서는 신발을 안 신는다. 맨발이거나 슬리퍼를 신는데 뚜벅뚜벅하고 들어오는 경찰관에게 차마 신발을 벗으라는 소리를 하지는 못했다. 당당하고 인상 좋은 그 경찰관은 활짝 웃으며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죠? 여기 사는 건 어때요? " 하며 별로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하고 종이에 사인을 해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다음 달에 또 올게요!" 한다.
벨기에에서 느낀 여자들에 대한 첫인상은 튼튼하다 였다.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서 배달을 시킨 적이 있는데 운전기사가 여자였다. 동반자 없이 혼자서 번쩍 가구를 들어 짐을 싣고 집 앞에다 내려 주고 갔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여자 직원도 맥주 상자를 번쩍번쩍 들어 옮긴다. 특별히 그런 사람만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뽑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쉽게 보지 못한 풍경이라 내 뇌리에 남은 것 같다.
벨기에에 경찰이 많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단다. 경찰들의 퇴직이나 전직으로 인하여 매년 거의 1,400여 명의 인력이 줄어들고 있으나 모든 인원을 충당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한다. 이렇게 이사하는 집까지 찾아와 체크하는 일까지 해야 하니 인원이 많이 필요하기는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사를 하면 정말 거주하는 지 2번을 확인하러 오는게 이 곳의 룰이다.
어쨌든 그다음 달에도 같은 경찰관이 찾아왔고 아주 환하고 반가운 웃음을 지어 주며 서명을 받고 갔다.
*이 글은 2016년부터 2020년 초까지 벨기에 플란더스 지방에 살던 경험을 토대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