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at Memo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꾸 Jan 25. 2021

시아빠가 사다주신 라면

식문화 차이와 향수병

 식문화 수업시간에  "서양과 동양의 식문화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건식과 습식이야."라고  다 알 것 같지만 그렇구나 하고 지나갔을 그 말이 이제는 자주자주 실감하며 산다.   그 교수님의 연구실 실습생으로 한 달 정도 일을 했는데 점심식사는 교수님과 실습생이 같이 먹었다.  식자재는 커다란 냉장고에 가득 있었고 밥은 연구생들이 직접 해 먹었다. 반찬은 교수님이 가져오시기도 하고 실습학생들이 가져오기도 했는데 교수님하고 처음 식사하면서 조금 놀랬다. 반찬을 펼쳐 놓고 뷔페식으로 덜어 먹는다. 자기의 젓가락으로 절대로 반찬을 집어서는 안 된다. 밥하고 국만 자기껄로 먹고 반찬이야 보통은 공유해 먹는 게 일반적인 건데  4,5명 정도가 먹으면서도 그렇게 뷔페식으로 먹는 게 조금 놀라웠다. 지금 보면 그게 맞는 건데.  



예전 직장 회식 자리에서 부대찌개를 먹는데 다들 국자로 자기 앞접시에 덜어 먹는데 한 동료가 자기가 먹던 숟가락으로 바로 찌개 안으로 넣어 퍼 먹는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렇게 먹는 게 뭐가 어때서? 괜찮지? 난 유난 떠는 거 싫어." 그녀의 '유난 떤다'는 표현 덕이었는지 아니면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들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난 더 이상 그 부대찌개를 먹을 수 없었다. 이젠 코로나 덕에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있지 않겠지만.



건너 건너 들은 지인의 이야기 중에 북유럽 남자와 결혼했는데 남편은 한국음식을 전혀 안 먹고 아내는 한국음식만 찾게 돼서 거의 두 가지 메뉴를 차린단다.  플란더스 남자와 결혼한 필리핀 친구도 그런 얘기를 했다.  남편은 스테이크와 감자를 먹고 자기는 밥을 먹어서 두 가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거기다 아침에 우유에 초콜릿을 타 먹는 괴이한 습관이 신기하다고. 독일 남자와 결혼한 친구는 남편이 어느 날 그러더란다. "널 너무 사랑하지만 김치 먹고 난 다음에 너에게서 나는 마늘 냄새는 참기 어려워." 그래서 김치를 담을 때 마늘을 한 쪽만 넣고 김치용으로 작은 냉장고를 따로 구입했단다. 친구가 마늘을 먹고 나서 냄새를 없애는 여러가지 방법, 우유를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사과가 효과가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참을 해서 기분이 묘했던 적이 있다.  같이 살기 시작하고 몇 달 지난 뒤 남편이 시댁을 방문 했을 때 시엄마가 남편보고 그랬단다. "네 입에서 마늘냄새가 나."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마늘을 덜 먹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전혀 신경이 안쓰이는 건 아니지만 어쩌란 말이냐. 






나는 아침은 차 한 잔, 남편은 알아서 커피와 빵과 치즈를 먹는다.  코로나 덕에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하면서는 점심, 저녁 둘 다 거의 한국식이 되었다.  점심은 주로 밥과 된장국. 저녁에는 밥을 먹을 때도 있고 파스타나 서양식으로 먹을 때도 있긴 하다. 한국식으로 먹을 때는 남편의 식사량은 나와 거의 비슷해진다. 입맛에 안 맞는다는 뜻인 걸 나도 안다.  그리고 그걸 보충하기 위함인지 요즘은 슈퍼마켓 갈 때마다 자신의 간식거리를 산다.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음식을 주로 내가 만드니 만드는 사람의 영향력이 큰 건 감수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남편이 서양식으로 먹는 걸 막는 것도 아니니깐. 남편은 내가 한 음식이 건강하고 맛있다고 말은 하지만 시댁에서 먹는 시아빠 음식을 더 많이 먹는다.  차가운 샐러드에 빵과 여러 종류의 치즈와 감자튀김, 고기 스튜가 그의 입맛에는 더 잘 맞고 난 그렇게 먹은 날은 집에 돌아와 라면을 삶아 먹는다. 배불리 먹었지만 뱃속에 뭔가 뜨끈하고 칼칼한 것을 넣어야 속이 풀리고 먹은 것 같으니까. 







이사를 와서 몇 번 시아빠와 같이 슈퍼마켓에 간 적이 있다. 먹고 싶은 거 골라봐 해서 내가 골랐던 우리나라 라면. 점심을 라면 끓여 먹는 나를 보며 시아빠가 했던 말씀은 "왜 포장지에 있는 그림처럼 버섯이나 채소를 넣고 안 끓여 먹니?" 미처 내가 생각해 보지 못한 거였다.



중국 슈퍼마켓에서 산 팥으로 앙금을 만들어 호빵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살 적에 호빵을 사 먹지도 않았는데 해외에 살기 시작하면서는 우리나라의 온갖 음식이 다 그립고 먹고 싶다.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향수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키스탄에 6여 년을 살다가 돌아온 친구는 시누이가 끓여 주었던 짜이(밀크티)가 못 견디게 마시고 싶단다. 그 시절 거기에서의 삶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시아빠에게 호빵을 드렸는데 빈말인지 진심인지 맛있었다고 하신다. 오늘 지나가다 들리며 안부 인사를 했는데 내가 생각나 라면을 샀다며 주신다. 


밤 9시부터 야간 통행금지에 방문자는 1인만 가능하다. 여기 사람들 잘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점점 더 통제가 심해진다.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칼국수집, 수제비집 혹은 칼제비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