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무슨 물건인가?-17
"예술의
바람직한 상태는
무엇입니까?"
"욕망이
그 답게 드러남이지."
"그 답게 드러나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날것의 욕망이
예술적 언어나 감각을 통해
아름답게 피어나는 거라 할까?"
"작가의 욕망이
예술적으로 승화된 건가요?"
"응. 작가 스스로 억압했던
카르마가 욕망의 추동력(推動力)에 의해
'자기다움'으로
구현된 거라고 하겠지."
"그런데, 욕망이라고 하면
왠지 탐욕처럼 들려서 말하기가
꺼려집니다."
"음.. 그건 욕망에 대한
그릇된 인식 탓이야.
욕망은 원래
신성(神聖) 한 거야.
마치 '색즉시공(色卽是空)'처럼,
본래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이지.
인간에게 욕망이란
본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분법적 관점이나
종교적 영향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굳어져버린 거라고
할 수 있어.
신성(神聖)이나
무욕(無欲)과 비교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편견인 거지."
"욕구(欲求)는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거라
신성하다고 봅니다만,
욕망(欲望)은
의식적이고 분별적이라 잘못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신성(神性)이라니...
납득하기가 어렵네요."
"물론 욕구는
생리적 본능이지.
하지만 욕망은
욕구에 문화, 상징, 상상 같은
자아의식이
개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욕망은 단순히
생존욕구를 넘어서 이상적인
자아를 향한 열망이고,
때로는
자아를 넘어 존재를 밀어가는
추동력이기도 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거지.
'욕망은 나쁘다'는 생각은
우리에게 주입된 학습 때문이야.
잘 못된 건
욕망이 아니라 욕망을 나쁘게
보는 시각이겠지.
아마존을 떠올려 봐.
밀림 속 약육강식도
욕망의 세계라 할 수 있는데,
그걸 두고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 있겠어?"
"그렇다면
욕망은 금기하고 억압할 것이
아니라는 건가요?"
"물론이지.
다만 욕망의 과잉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되는 건
경계해야겠지.
우리들 마음속에는
직관이 있어서 매 순간
자신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는데,
생각이란 놈이
그걸 무시하고 앞서 나가
욕망을
억누르거나 과도하게
부리다 보니,
저절로 발로 되는
욕망마저 나쁜 것으로 오해하게
된 거라 하겠지.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결핍'이 아니라
'생산과 생성의 원동력'
으로 보았고,
니체는 '생의 의지',
스피노자는 '존재하려는 힘'
이라고 했어.
다 같은 맥락이지."
"음.. 이제 이해가 좀 되네요."
"그러니까 관념적인
신성(神性)을 신봉하느니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신성(神聖)이고 숭고(崇高) 한 것임을
자각하는 게 나을 거야.
그래야 작품도
깊어질 수 있어.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
베토벤이 이런 말을 했어.
'신은 생각이 아니라
창자를 통해 만난다.'
정말 놀라운 말이지 않니?
욕망과 신성은
결국 이름만 다른 하나인데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는 거겠지.
욕망은 존재를 밀어가는
생명력 자체야.
그리고 자기 정체성과
세상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창조적 힘이기도 하고."
"그건 알겠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어떻게 하긴,
억누르지 말고 드러내야 할 때,
잘 드러내야지
화나면 화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그려.
그렇게 예술을 통해
네 생명력을 드러낼 때,
그건 더 이상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생명의 울림이자
신성한 존재의 도도한
물결이 되는 거지.
예술가란
이처럼 생명의 물결 위에서
'비선형적 균형(非線型的 均衡)'을 잡으며
춤추는 자라고 할 수 있어.
논리도 아니고
대칭도 아닌, 감각과 직관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선형적 균형.
바로
여기에서 욕망의 미학이
꽃을 피우는 거지."
"비선형적 균형...
멋진 말이네요.
불균형의 균형에서 핀다는...
욕망의 꽃,
저도 한 번
꽃 피워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