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무슨 물건인가?-16
예술은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지만,
'아름다움'은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하는
근본이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은
시각예술이라 불리며,
기본적으로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예전에는
그림을 감상할 때 조형적인 요소를
중시했지만,
현대에 들어
개념미술의 영향으로
'읽는 것'으로
중심이 옮겨 왔다.
조형은
이차적인 것이 되었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조형이든 개념이든,
시각을 통해 만나는
예술작품이
감성과 정신을 울려 큰
감동을 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름답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
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다음 두 학자의
정의를 살펴볼 수 있다.
"고유섭"은
"아름다움이라는
우리말은 미의 본질을
단편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아름'이라는 것은
'안다'의 변화인 동명사로서
미의 이해작용을
표상하고,
'다움'이란
형명사로 격, 즉
가치를 말하는
것이니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인격적 가치, 즉 인격을
말함이요,
'일다움'이
일의 정상(正相)을
말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은
지의 정상, 지적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름이
추상적, 형식적 논리에
그침과 달라서
종합적
생활감정의 이해작용에
근거를 둔 것을 뜻한다.
실로
깊은 철학적 뜻이 있는
언표라 아니할 수 없다."
고 하였다.
또한 "박현"은
'나를 다시 하는
동양학(1999. 비나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름다움의 고어는
'알움 답다'이다.
'알' 즉 씨앗이
'움' 즉 싹을 티워 그 답게
한다는 뜻이니,
다시 말해 자신의
주어진 모습을 그대로
온전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을 일러
아름답다 한다."
이 두 사람의 견해는
모두 철학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박현의 정의에 공감한다.
'자신의 주어진 모습을
그대로 온전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이란
말이 나의 마음을 움
직인 것이다.
그가 말한 씨앗이
싹을 티워 그 답게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아름답다'의 한자인
美(미)는
羊(양)과 大(대)의 결합이다.
고대에는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가장 튼실하게 성숙한 양을
골라 바쳤다고 한다.
보기에도 잘 자란 양,
제물로서 가치 있는 대상을
'아름답다'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성숙한 양이라 해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결함이 있을 수도 있고,
좋고 나쁨이 섞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알이 움을 티워
자기답게 된 '알움다움'이란
완전함만이 아닌,
불완전함까지도 함께
품은 '그 다움'이
'아름다움'일 것이다.
단일 성향만을
가진 것을 단세포라 한다.
단세포도 생명체이긴 하지만
지적 생명체라 부를 수는 없다.
세포가 증식하고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야
비로소 지적 생명체가 되듯,
인간도
다양한 성향과 요소가
어우러져 '사람다움'을
이룬다.
근골혈육처럼
여러 요소와 성향들이
모여 몸이 되고,
현재의식, 잠재의식,
무의식의 몇 가지 성향이
어우러져 마음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악(善惡) 중
유독 자기 기준에서
선한 것만을 취하려는
이분법적 경향이 있다.
그래서
행복, 기쁨, 즐거움 등은 취하고
불안, 초조, 갈등, 결핍 등의
고통은 회피하거나 없애려고 한다.
불안이나 고통이
지나치게 많거나 없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
아예 없애려 한다면
기쁨이나 행복마저도
사라 진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
우매한 일이라 할 것이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들도 실제로 가까이서
관찰하면 시들고
벌레 먹은 잎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고저장단 희로애락처럼
양자의 속성이 충돌과
조화를 이룰 때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에게도
아름다움을 빗대어 말할
때가 있다.
온갖 역경과 고통을
인내하여 '자기 다움'을
이뤄내거나,
희생과 봉사의
고통과 노고를 통해
사람들을 이롭게 한 사람을
일러
'아름답다'라고
칭송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