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과 부조 봉투

by 김기원

어느 순간부터 경조사의 내용이 달라졌다. 혼인을 알리는 소식이 급격히 줄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던 시대를 지나 하나도 많다던 아이들이라 혼인 자체가 줄었다, 요즘은 혼인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서 서두르지 않거나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단다. 줄어든 혼인 소식을 대신해 부고가 꾸준히 자리를 메꿨다.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으니 모든 부고는 애통한 소식이다. 그나마 천수를 다 누리셨을 법한 어르신의 부고는 조금은 마음이 가볍다.

가끔 아주 가끔 당황스러운 부고도 받는다. 상주 자리에 있어야 할 아는 이름이 없다. 잘못 보냈나 싶어 의아해하 보면 죽은 이가 아는 사람이다. 한글로 쓰였지만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고. 복잡한 감정을 담은 긴 한 숨을 쉰 다음에야 정신이 돌아온다.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데 지금 나는 대문 앞에 서 있다.

죽음을 생각하면 처음 가입한 보험이 생각난다. 월급을 받는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가입한 보험은 암보험이었다. 보장 기간이 20년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 들었으니 마흔 후반이면 보장 기간이 끝난다. 보험을 몰라서 그랬기도 했지만, 당시 생각으로는 마흔 후에 암에 걸리면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살아난대도 제대로 생활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암환자가 되거나 암으로 죽는 것이 흔치 않았다. 암이 없어서가 아니라 발견을 못해서다. 어렵게 발견하면 대부분 말기라 손쓸 새도 없이 돌아가셨다. 그런 때였으니 마흔 후반 오십 이상은 어마어마한 나이라고 여겼었다.

당연히 아무 탈 없이 20년이 지났고, 만기가 지나 불입한 보험료도 받았다. 죽으면 아쉽지만 아까울 것 없는 나이라 생각했던 오십을 거뜬히 넘겼다. 지금은 오십에 죽는다는 것은 아쉽고 아까운 요절 아닌 요절이다.

최근에도 부고를 하나 받았다. 상주가 아는 사람이라 다행이었고, 망자의 연세가 높으셔서 내심 안도가 되었다. 호상이라 부를 만한 장례는 가는 발걸음도 가볍다.

문상을 가기 위해 부조 봉투를 준비한다. 장례식장에 말끔하게 인쇄된 부조 봉투가 있다. 현금인출기도 있으니 이름만 제대로 쓰면 된다. 알면서도 장례식장 부조 봉투를 사용하는 것이 꺼려진다. 정성이 쬐끔은 덜한 것 같아, 가급적이면 미리 준비한다. 내용물이 빈약하니 정성으로 메우려는 얕으막한 심산이다.

안이 비치지 않는 하얀 봉투 앞면에 붓펜으로 부의(賻儀)라고 한자로 쓴다. 가끔 써보는 글자라 몇 번 연습을 한다. 하지만 막상 쓸 때마다 붓끝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이 정도 정성을 들여야 부조다운 부조 봉투가 완성된다.

뒷면에는 이름을 쓴다. 이름 옆엔 소속을 써야한다. 소속! 동명이인이 여럿 있을 수 있으니, 나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여기서 붓을 잠시 멈춘다. 뭐라고 쓰지? 퇴직을 했으니 소속이 없다. 예전 직장을 써야 하나? 아니면 지역을 쓸까? 주소라도 써야 하나? 덩그러니 이름만 쓰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나를 식별하기 위한 것이라면 소속 대신 나를 나타내는 다른 말을 쓸까? 얼굴이 갸름한, 눈이 작은, 턱에 점이 있는, 머리가 긴, 뭐 이런 것을 써야 하나?

아니면 상주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을 쓸까? 함께 근무했던,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당신을 열렬히 존경하는, 당신을 흠모했던, 뭐 이런 식은 어떨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 늘 하던 대로 전 직장을 쓰지만 왠지 나를 적확하게 나타내는 건 아닌 거 같다.

“사람은 두 번씩 죽는다. 자신의 인생을 정의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삶의 의미가 사라졌을 때 사회적 죽음이 온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중에서

부조 봉투를 쓴다. 아직 넘지 않은 생물학적 대문 앞에 서서, 이제 막 넘어온 사회적 대문을 돌아본다. 다행이다. 아직 탄탄한 대문이 하나 남았다. 이 대문이 활짝 열리기 전에 새로운 대문을 만들 수도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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