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버전 퇴직. 일상

05:30분 알람을 지웠다

by 김기원

알람이 울린다. 스마트 폰을 집어 든다. 5시 30분. 스마트 폰 이전에는 휴대폰이, 그 이전에는 시계가, 그 그 이전에는 엄마가 깨웠다. 시각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지만, 여전히 자발적으로 일어난 적은 없다.

스스로 일어 나지 못한 하루는 온종일 이끌려 산다. 지하철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종소리 따라 점심을 먹고 시각에 맞춰 퇴근한다. 내일을 시작할 알람을 맞추고 오늘을 마무리한다. 일러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활이다.

이끄는 것은 알람만이 아니었다. 관리하며 살았다고 믿었던 시간들이, 실은 커다란 틀 속에서 속절없이 이끌려 살았던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헤아리고, 이루고 싶은 것보다 벌고 싶은 것을 관리했다. 다스리지 못한 마음은 눈치껏 처리했다. 뒤돌아 보는 것이 뒤처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며 이끌려갔다.

베타버전 퇴직 첫날, 여전히 알람은 05:30분에 울렸다. 알람을 지웠다. 다르게 살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날의 행적을 지우려는 듯 알람을 지웠다.

원하는 대로, 몸이 하는 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내 몸속 깊숙한 곳에 저장된 이끄는 힘을 탐구하기로 했다. 이끌려 살지 않고 이끄는 삶을 살기로 했다.

한정 없이 오랜 잠을 잘 것만 같았지만 문신처럼 남아있던 습관들은 여전히 05:30분이면 나를 깨웠다.

나를 이끌기 위해 나에겐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알람을 지우고 한동안 들쑥날쑥하던 기상 시각이 일정한 흐름이 생겼다. 내 몸속의 생체 시계는 07:00 즈음에 작동한다. 그 시간부터 알람 없는 나의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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