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버전 퇴직. 일상

07:00 눈을 뜨고 라디오를 켠다.

by 김기원

스스로 눈을 뜬다. 알람이 눈을 뜨게 만든 시절이 끝났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간이다. 일곱 시 즈음. 조금씩 스스로의 규칙을 찾아간다.

교육방송 라디오 앱을 연다. 초급 영어 방송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어로 설명하고 영어로 말해준다. 친절한 방송이다. 오랜 청취자이지만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았었다. 흘려듣다 보면 아주 조금이라도 남는 것이 있길 바라서 켜놓았을 뿐이다. 노력 없는 바람은 바람과 같아서 쉽게 날아간다. 오랜 기간 들었지만 남은 것이 없다. 바깥 양반이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라디오는 라디오 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따로 바쁠 뿐이다.

그런데도 교육 방송을 꾸준히 켜는 이유는, 영어는 풀리지 않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중고교를 다니는 내내 영어는 중요한 과목이었다. 대입 시험에서도 영어는 다른 과목에 비해 배점이 높았다. 영어라 그랬는지 몰라도, 문과였음에도 성적은 영-- 시원치 않았다. 도통 나아질 기미도 없었다. 발음 기호나 단어는 외워지지 않았고 문법은 차라리 외계어였다. 돌이켜 보면 노력 없는 바람이었다. 그때부터 영어는 깊은 곳의 묵직한 과제였다. 영어를 떠나 지냈던 대학 학부 시절이, 있는 것을 애써 부정한 채 영어 해방구에 살던 즐거운 한때였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한동안 영어 해방구에서 지냈다. 그러다 지속적인 벌이가 있고, 해외여행이 유행하자 심연 속의 영어가 표면으로 올라왔다. 외국 여행이 남의 일로만 여겨졌을 때는 먼 산 바라보듯 했지만, 얼떨결에 다녀온 해외여행은 끊을 수 없게 되었다. 영어만으로도 어디서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영어는 다시 표면으로 떠올랐다. 귀국행 비행기에서 다음 출국을 꿈꾸며 영어를 잘해 보고 싶었다. 회화 책을 여러 권 샀었고, 여행 영어 학원을 다녔었고, 인터넷 강의를 수 차례 들었었다. 앱으로도 꾸준히 회화 공부를 했었지만 도무지 귀와 입은 능숙해지지 않았다.

영어는 언제쯤 잘하게 되는 걸까? 끝날 것 같지 않은 고민에 지칠 즈음 깨달았다. 고민의 대상이 '언제쯤'이 아니라 '잘한다'에 있어야 했다는 것을. '잘한다'는 것을 모르고는 아예 처음부터 잘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본질은 외면한 채, 해도 해도 과제가 끝나지 않는다고 징징거리고 있는 꼴이었다.

우연히 본 방송에서 95세 먹은 할머니는 비행기 좌석을 찾고 간단한 단어를 이해하는 정도면 영어를 잘하는 것으로 여기고 공부하신다. 할머니는 언어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끝을 바라볼 수 있었고 끝이 보이는 고통은 충분히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혼자서 몇 차례 드나든 외국에서 굶은 적도 없고, 비행기를 놓친 적도 없으니 이 정도면 잘하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없으니 아직은 아닌 걸까? 본질보다 노력 없는 욕심을 앞세운 나의 영어는 여전히 과제로 남았고, 끝날 줄 모르는 과제 때문에 애꿎은 라디오만 바쁘다.


본격적인 집사람이 된 후 얼마 안 되어 영어 방송 듣기를 완전히 끊었다. 잘하거나 잘한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노력 없는 바람으로 방송을 켜 놓고 '열심'이 없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을 끊기로 한 것이다. 차라리 가득한 욕심을 덜어내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과학은 내 편이 분명하다. 번역 앱들이 무수히 등장했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이제는 클래식 방송을 듣는다. 흘려듣기에는 클래식 방송이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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