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0 라디오에서 음악은 흐르고 나는 달력을 본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깔린다. 그리고 나는 저울 위에 오른다.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할 때 현실의 어둠은 또렷해진다. 남의 살이 맛난 것만 알았지 내가 가진 나잇살이 얼마나 맛난 줄 모른 채 거르지 않았더니, 저울 속 숫자는 날마다 신기록을 갈아치운다. 종이라도 자를 듯한 날 선 옆모습은 어디 갔을까? 그 모습을 잊지 않으려 허리춤에 숨기고 다녔더니 어느새 옆 모습은 D-look D-look. 두려운 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 모르는 건 항상 두렵다. 그래서 알기 위해 애쓴다. 어떻게 변해가는지 매일매일 재고 예측한다. 잊지 않으려 달력에 적는다.
거실에 예쁨이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는 커다란 달력이 있다. 크기도 크지만 글씨가 커서 어디서든 잘 보인다. 음력이 적혀 있어서 생일이나 제삿날을 알기 쉽다. 손 없는 날도 표시되어 있다. 이사할 기약은 없지만 마음만은 늘 새 아파트로의 도주를 꿈꾼다. 듣도 보도 못한 각종 기념일도 빼곡하다. 알지 못할 뿐이지 우리 사회는 다양하다. 한자로 된 일간도 있다. 토정비결을 볼 때나, 흔하진 않지만 새로 태어난 생명들의 운명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12 지지 동물 그림은 아주 조악한 솜씨다. 좁지만 메모 공간도 있어서 기억해야 할 일들을 적는데 요긴하다. 이곳에 주로 몸무게를 적는다.
많은 정보를 한 장에 담으려다 보니 달력에는 예쁨을 담을 공간이 없다. 사람이나 달력이나 하나를 잘하면 다른 하나는 잘하기 어렵다. 예쁘면서 많은 것을 알고 있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신 예쁨을 담당하는 달력들은 따로 있다. 책상 위의 작은 달력이나 각종 단체에서 보내온 달력들이 주로 예쁨을 담당한다. 날짜를 알려 주는 기능은 있지만 글씨가 작아서 충분치 않다. 대신 크고 예쁜 그림이 있어서 볼 때마다 기분 좋게 만든다.
역할은 달라도 요일을 적는 방식은 비슷하다. 일요일로 한 주를 시작하고 토요일로 한 주를 마무리한다. 쉬는 날로 시작하고 쉬는 날로 끝난다. 적극적으로 쉬고 싶다는 집사람의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한다. 친절한 달력은 말한다. 달력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쉬고 싶어 한다고.
유독 눈에 띄는 달력이 하나 있었다. 쉬는 것으로 일주일을 시작하는 것이 싫었는지, 월요일로 시작해서 일요일로 끝나는 달력이다. 매주 한 번씩 연휴가 있어서 언뜻 보기엔 즐거웠는데, 볼 때마다 요일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새로움이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낡은 선은 있기 마련이다. 조용히 달력을 치웠다.
집사람이라서 달력이 더 소중해졌다. 매일 반복되는 날들이라고 여겨져서, 일 년, 한 달, 한 주, 날짜들의 무더기 속에서 기계처럼 지나는 날들이라고 여겨져서, 지나면 다시 되돌리지 못할 날이라서, 오롯한 하루가 되게 하려고 유심히 오늘을 본다. 어떤 기념일이 있고, 절기가 무슨 날이고, 이사하긴 어떤지, 몸무게는 늘었는지 줄었는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야 한다. 오늘도 클래식을 배경 삼아 몸무게를 잰다. 그리고 커다랗게 달력에 적는다. 오늘도 오늘을 오늘로만 살아보기로 한다.
정식버전 퇴직 이후에도 여전히 몸무게를 적는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이젠 날짜가 아니라 몸무게다. 집사람이 된 이후로 몸무게가 조금씩 줄어가고 있다. 알아야만 변화를 꿈꿀 수 있고 알면 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