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버전 퇴직. 일상

07:00 달력에는 몸무게만 적진 않는다.

by 김기원

그러고 보니 벌써 5년이 지났다. 5년 생존율을 따진다면 완치 판정을 받을 시간이지만, 완치란 없다. 남은 날동안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나도 모른다. 의사는 말해 주기 싫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는지, 늘 듣던 말만 되풀이한다. 같은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비장해진다.

실은 의사의 말보다 더 겁나는 일은 따로 있다. 산 것과 살지 않은 것의 경계를 서성이는 일.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주어야 할 날이 올까 봐 두렵다.

처음 진단을 받을 때는 오진이라고 굳게 믿었다. 통증은 피곤할 때 종종 생기는 증상이고, 길어지는 통증은 누구라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염증이라고 믿었다. 의사는 의학적인 근거와 검사 결과를 세 개나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믿는 것이 모두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해 주었다. 근거 없던 믿음은 물가의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끝내는 의사의 말에 승복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아직 살아있는 자는 사는 것 이외의 삶을 생각하기 싫어한다. 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이를 배웅하는 자리에서도 삶만을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배웅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피하려 한다. 어느 날 세월의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피하던 먼 길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문득 발견한다. 언제냐의 문제일 뿐 누구에게나 공평한 만남이다.

의사는 한 보따리 약과 생존의 희망을 처방해 주었다. 조건은 간단했다. 잊지 밀고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했다. 먼 길이 조금 더 멀어지는 희망을 가지려면 하루도 잊지 말고 꾸준히 먹으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희망에도 열심인 사람도 있지만 보여주는 희망에도 게으른 사람이 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일에는 심드렁한 사람. 일 치를 받아 왔건만 백일이 지나도 삼십 개가 남았다. 아직은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덜 절박하다. 그래도 때가 되면 꼬박꼬박 생명 연장의 처방을 받으러 다녔다.

보여주는 희망에 부지런해진 것은 의외의 동기가 있다. 완치에 대한 기대가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해야 하는 일 중에서 지극히 사소한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했다. 꾸준히 먹었냐는 의사의 물음에 아니라고 답하거나 속여서 말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별것 아닌 일에 태연스레 거짓을 말하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그래서 달력에 표시하기 시작했다. 몸무게를 적고, 하루치를 꺼내고 동그라미를 표시한다.

동그라미를 치면 안심이 된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먼 길이 더 멀어졌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전혀 다른 의미에서 묘한 위로가 된다. 사는 게 너무 좋아 죽겠다는 날만 계속되진 않는다. 많은 날은 머물고 싶지만 아주 드물게 가끔은 떠나고 싶은 날도 있다. 떠날 수 없어서 머무는 지겨운 날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날이 피할 수 없이 올 것을 안다. 그때는 그저 약을 남기면 된다. 즉시는 아니지만 서서히 서서히 모르게 모르게 길을 떠나는 것이다. 마치 몸속 어딘가에 남들은 없는 스위치를 하나 달고 사는 느낌이다. 전원을 끄면 잔불이 오래오래 지속되다가 서서히 꺼지는 스위치.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인위적이지 않다. 아주 자연스러워서 남들은 물론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고, 남은 시간도 꽤 될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되돌리고 싶으면 스위치를 올릴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살아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아니라서 식탁 위에 약을 꺼내 놓는다. 식후 30분에 먹어야 한다. 먼저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정식 퇴직 후에도 약은 잘 챙겨 먹는다. 의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고, 작은 일이라도 꾸준한 모습이 좋다. 작더라도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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